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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양인모 "내 음악 우아하다? 거기서 벗어나는게 목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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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특유의 탐구 정신으로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크레디아/Neda Navaee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특유의 탐구 정신으로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크레디아/Neda Navaee

“지금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아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예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4)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그는 지난달 서울의 롯데콘서트홀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연주곡은 19세기의 대표적 바이올린 작곡가 앙리 비외탕의 협주곡 5번. 양인모는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바이올린 연주자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넘어갔고, 음악은 일부러 꾸며내는 부분 없이 흘러갔다. 약간은 무심한 듯, 전반적으로 매끄러웠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인터뷰 #국제 대회 석권한 스타 연주자 #"요즘에는 음악적 '헤어핀'에 관심"

양인모는 왜 자신의 특징이자 장점인 우아함을 넘고자 할까. 그는 콩쿠르 우승자로 이름을 알렸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2022년에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모두 한국인 최초 우승이었다. 당시 2022년 심사위원장이었던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는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추가하지 않고 노래와 편안함을 만든다”고 평했다. 역시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편안함을 양인모의 특기로 지목됐다.

“제 음악에 대한 대부분의 평이에요. 우아하다, 유려하다, 쉽다…. 그런데 저에게는 또 다른 산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청중도 내 소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래서 기대한 대로 듣는 느낌을 넘어서고 싶어요.” 연주 후 중앙일보와 만난 양인모는 음악가가 새로운 단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깊이 연구하는 연주자로 꼽힌다. 단순히 악보를 펼치고 악기를 연습만 하는 대신, 논문과 최신 저널 같은 자료까지 훑으면서 숙고한다.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찾는 거죠.“

이런 작업을 즐기는 양인모는 최근 한 프로젝트에 꽂혀있다고 했다. 단순하게도, 작곡가들이 즐겨 썼던 셈여림표다. 소리를 키웠다가(크레셴도,〈) 줄이는(디크레셴도, 〉) 지시가 한꺼번에 있는 ‘헤어핀(〈〉)’이다. 감정도 따라서 부풀었다 줄어드는 대목의 음악에 주로 이런 지시어가 붙어있다. 기호의 모양이 꼭 머리에 꽂는 핀과 같다고 해서 ‘헤어핀’이라 부른다. 양인모는 “헤어핀 지시로 시작하는 음악만 모아서 연주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왜 헤어핀일까. “우리가 요즘 듣는 거의 모든 연주의 패러다임이 헤어핀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음량을 부풀렸다 줄이는 이 표시는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최근의 연주자들이 이처럼 감정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는 뜻이다. 양인모는 ‘헤어핀’을 내세운 곡들을 연주하면서 최근의 연주 경향, 또 앞으로의 경향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 1번, 드보르자크의 4개의 낭만적 소품처럼 ‘헤어핀’으로 시작하는 작품을 골라서 모았다. 올여름 독일 크론베르크에서 공연을 열 예정이다. 그는 또 “브람스도 클라라 슈만에게 편지를 쓰면서 ‘친애하는 클라라’하고 헤어핀을 적어놨다. 과연 낭만 시대 작곡가들에게 헤어핀은 뭐였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렇게 음악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찾는 작업은 결국 자신의 연주 스타일이 갈 방향에 대한 고민과 만난다. 그는 우아한 사운드, 감정적인 해석을 넘어서는 스타일을 찾고 있다. “결국에는 어린 시절 연주했을 때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해법인 것 같다.” 양인모는 “연주할 때 생각할 게 너무 많아지면서 스스로 복잡해졌다”고 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미국 루이지애나의 중학교 학생들이 연주하는 영상을 구독하고 찾아본다. 진정한 애호가들이 음악을 즐길 때의 진정성과 순수함이 결국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양인모는 인정받을만한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다. 초등학교 4학년에 첫 독주회를 했고, 특히 파가니니 콩쿠르 이후 극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실황으로 녹음했다. 하지만 현재의 그에게 목표는 그런 기술적 완성과 거리가 멀다. “어린 시절 음악을 처음 시작해 바이올린 현을 그었을 때의 희열이 더 근본적인 기쁨이었다. 그 후에 콩쿠르에서 이기는 기쁨, 오디션에서 인정받는 희열 같은 사회가 만들어준 쾌락에 너무 익숙해졌다. 순수한 기쁨을 더 즐길 줄 아는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

지난달 롯데콧서트홀에서 비외탕의 협주곡 5번을 연주한 양인모. 사진 롯데콘서트홀

지난달 롯데콧서트홀에서 비외탕의 협주곡 5번을 연주한 양인모. 사진 롯데콘서트홀

베를린에 거주하던 그는 지난해 크론베르크로 옮겨가면서 음악적 시야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사한 집의 바로 옆에 널찍한 연습실이 생겼다. 언제든 가서 맘껏 연습할 수 있다. 낭만 시대처럼도 해보고, 바로크 시대처럼도 해본다. 그러면서 음악을 다르게 듣게 됐다.”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하고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신이 이제껏 들어왔던 찬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됐다.

그는 또 클래식 음악을 넘어 라디오헤드 같은 록그룹의 열성 팬이기도 하고, 직접 곡을 믹스해왔다. “요즘에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양인모는 “대신 바이올린 독주곡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꿈속에서 좋은 재료가 떠올라서 두 마디를 적고 다시 잤다. 그걸로 시작해 현재 2~3분 정도까지 곡을 썼다.” 자유로운 환상곡 형식이라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다.

찬사를 뛰어넘으려 애쓰는 양인모의 연주는 이달 통영에서 들을 수 있다. 3일 베를린필의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등과 함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주한다. 4일에는 프랑스의 스타 피아니스트인 베르트랑 샤마유와 함께 무대에 선다. 6일에도 파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과 바르토크ㆍ하차투리안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모두 2024 통영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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