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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함의 극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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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별세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2001년 뉴욕 카네기홀 연주 장면. 사진 AP=연합

23일 별세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2001년 뉴욕 카네기홀 연주 장면. 사진 AP=연합

 20세기의 대표적 거장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23일(현지시간) 고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무엇보다 독보적인 테크닉으로 주목받았다. 어려운 기교가 필요한 쇼팽 연습곡(24곡) 전곡을 정확한 연주로 녹음한 1980년 음반이 대표적이다. 특히 1968년 18세에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최초의 비동구권 출신으로 만장일치 우승할 때도 완벽한 테크닉에 관심이 집중됐다. ‘악보의 엑스레이 사진과 같은 연주’ ‘악기를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평가를 주로 받았다.

하지만 기교 이상의 예술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지나치게 완벽하고 음악적으로 풍부하지 못하다는 평이었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는 폴리니에 대해 “시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비평한 것으로 알려진다.

폴리니는 어린 콩쿠르 우승자, 기교적 연주자라는 틀을 벗어나려 노력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연주를 하지 않고 은둔했다. 대회의 우승 부상처럼 세계 곳곳에서 연주하는 관행을 깨고 공부에 몰두한 것이다. 무대에서 스타가 되는 대신 당대의 거장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찾아가 배움을 청했고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또 20대 시절부터 슈톡하우젠ㆍ베베른 같은 20세기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해 노년까지도 이런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작곡가 루이지 노노와 교류하고,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공장의 노동자를 위해 공연했으며 학생을 위한 별도 좌석을 마련하는 등 ‘모든 사람을 위한 음악’이라는 이상을 좇았다. 1996년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2001년 디아파종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쇼팽의 녹턴 녹음으로 그래미를 수상했다.

건강 이상의 징후는 많았다. 지난해 6월 런던에서는 연주할 곡을 잊어버리고, 악보를 가지고 나와서도 부정확하게 연주해 논란이 일었다.  2022년 80세를 기념한 런던 공연에서 다양한 작곡가의 굵직한 작품을 연주한 것이 마지막 정식 무대로 꼽힌다. 같은 해 3월에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모두 녹음한 음반을 내놨다.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해까지 연속 2년으로 최초의 한국 공연을 예고했다가 건강 문제로 모두 취소했다. 이렇게 해서 폴리니는 한국에서 한 번도 공연하지 않은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로 기록됐다. 당시 그는 “한국으로 여행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 이른 시일 내에 한국 관객과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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