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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또 이전" "남산 고도제한 푼다"…묻지마 부동산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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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총선이 8일 앞으로 다가오자 여야가 부동산 공약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실현가능성도, 재원도 불분명한 개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①당 방침과 배치

박성준(서울 중-성동을)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현행 공시지가 12억원에서 16억원으로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같은 당 강청희(서울 강남을) 후보는 강남구 수서·세곡동 일대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성준 민주당 서울 중-성동을 후보(오른쪽)와 이재명 대표(가운데), 전현희 중-성동갑 후보가 지난달 28일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박성준 민주당 서울 중-성동을 후보(오른쪽)와 이재명 대표(가운데), 전현희 중-성동갑 후보가 지난달 28일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두 후보는 “초고가 아파트에만 종부세를 물려야 한다”(박 후보), “양재천 이남은 동별로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강 후보)는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같은 부동산 규제 완화안은 민주당 강령과 배치된다. 민주당 강령에는 “투기수요 억제, 주택수급 균형 등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한다”는 조항이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이 내부 조율 안 된 자극적인 공약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②나홀로 약속

서울 양천갑에선 ‘목동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공약을 놓고 황희 민주당 후보와 구자룡 국민의힘 후보가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목동 택지개발지구는 2021년 4월부터 서울 압구정동, 여의도동 아파트지구, 성수동 전략정비구역 등과 함께 ‘압·여·목·성’으로 묶여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됐다. 부동산 거래 시 구청장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부동산 보유자의 불만이 컸다.

만약 규제가 풀리면 인근 집값이 크게 움직여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이달 초 규제 연장 여부를 정하는 서울시 역시 신중론으로 기운 모습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다른 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며 규제 완화에 선을 그었다.

이혜훈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후보(가운데)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5일 중구 신당동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혜훈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후보(가운데)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5일 중구 신당동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혜훈(서울 중-성동을) 국민의힘 후보는 ‘남산 고도제한 완화’를 공약했다. 현재 남산 일대는 남산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12~40m로 고도제한을 두는데 이를 완화해 재산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고도제한규제를 정하는 서울시는 “현재 고도제한의 기본방향을 유지한다”는 방침인데다 남산을 둘러싼 각 지역 요구사항이 달라 중-성동을만 규제를 풀긴 어렵다는 관측이다.

③현실성 제로

현실성 떨어진 공약도 부지기수다. 강태웅(서울 용산) 민주당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삼고 있다. 교통체증과 소음공해가 표면적 이유지만,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유권자 표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엔 재이전이 사실상 어려운데도 강 후보는 이전 방식이나 시점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금태섭 개혁신당 서울 종로 후보가 지난달 24일 종로구 이화동에서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건 기자

금태섭 개혁신당 서울 종로 후보가 지난달 24일 종로구 이화동에서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건 기자

금태섭(서울 종로) 개혁신당 후보는 “종로구 내 9개 대학의 담장을 허물어 종로를 대학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처럼 대학과 주민이 밀착한 형태로 종로를 개발해 대학가 주민 표를 얻는다는 포석이다. 금 후보 측은 “대학 내 부지가 좁아 주민 거주지에 대학 시설을 지으면 대학도, 주민도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종로구 대학 일대는 주거밀집지역이 많아 대학건물을 지을 부지확보가 어려울 수 있고, 주민 간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다.

④재원 없고 기업 눈치만

복합쇼핑몰은 이번 총선 단골 메뉴다. 유경준(경기 화성정) 국민의힘 후보는 “동탄에 신세계 스타필드나, 롯데의 제2 롯폰기 힐스 같은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강훈식(충남 아산을) 민주당 후보도 “아산에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유경준 국민의힘 경기 화성정 후보(오른쪽)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동탄북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유경준 국민의힘 경기 화성정 후보(오른쪽)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동탄북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복합쇼핑몰은 민간기업의 참여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하다. 기업은 사업성을 면밀하게 따지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유치하기 어렵다. 각 후보는 기업 유치 방안이나 인프라에 드는 재원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상당수 후보가 현실성 낮은 공약으로 표심을 끌려는 ‘쉬운 정치’를 하고 있다”며 “검증 안 된 공약에 유권자가 혹할 경우, 역량이 부족한 정치인이 국회에 입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퍼주기 공약...못 지키면 슬그머니 ‘표지갈이’

4년 전 21대 총선에도 부동산·개발 공약이 쏟아졌지만, 선거 후 슬그머니 폐기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총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장경태(서울 동대문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총선 당시 “동대문구 장안동에 세종문화회관급 대규모 문화예술 공연장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이 사업은 2019년 서울시가 영등포구에 짓겠다고 한 사업이어서 당시도 뒷말이 많았다. 추진 중 약 5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탓에 동대문구의회도 난색을 보이면서 슬그머니 폐기됐다.

지난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당선된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성남 서울공항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비행소음과 고도제한 탓에 불만을 가진 지역 정서를 고려한 계획이었지만, 당선 후 공항 이전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부동산 개발 이익에 영향을 주는 교통공약도 선거 후에는 ‘나몰라라’ 취급을 당했다. 김용민(경기 남양주병) 민주당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금곡역 환승역세권 개발 추진’을 공약했지만 달성하지 못했다. 홍석준(대구 달서갑) 국민의힘 의원은 대구 지하철 2호선을 경북 성주군까지 연장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가, 이번 총선에서 '복붙'처럼 되풀이한 경우도 있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년 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 ‘계양테크노밸리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계양구 약 330만㎡ 부지에 1만7000여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첨단산업단지와 결합한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별 진척이 없었는데,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같은 공약을 또 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의원 251명(총 253명 중 공석 2명 제외)이 약속한 지역개발 공약 7450개 중 지난해 12월까지 완료된 건 3749건, 50.3%였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공약은 구체적인 검토 없이 막연한 선언처럼 나오는 경향이 짙다”며 “공약의 현실성을 높이려면 후보가 입법·재원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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