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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북제재 역행하는 러시아, 상임이사국답게 처신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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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23년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2023년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러 거부로 15년 활동 ‘유엔 전문가 패널’ 연장 못 해

정부, 대북제재 이행 위한 ‘유엔 외교’에 집중해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활동이 러시아의 방해로 4월 30일자로 15년 만에 종료된다. 러시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의 전문가 패널 임기 1년 연장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하고 중국은 기권했으나 러시아가 몽니를 부린 것이다. 대북 제재에 ‘일몰 조항’을 신설하자는 러시아 요구가 결의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1874호)에 따라 창설된 전문가 패널의 활동 중단은 충격적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이행 점검이 무력화할 우려가 높아진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북한발 안보 위협이 그만큼 커질 수 있어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무기 제조를 위한 장비·부품 반입, 정제유 밀수와 불법 화물 환적, 사이버 공격과 가상화폐 탈취, 사치품 수입 등 유엔 제재 위반 사례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매년 두 차례 심층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해 왔다. 특히 지난달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를 몰래 거래함으로써 대북제재를 위반한 정황을 담은 사진 등을 제시하는 성과를 올렸다.

패널 활동 종료의 일차적 책임을 러시아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P5)의 하나로 세계 평화를 위해 어느 나라보다 더 책임 있게 처신해야 할 러시아의 이런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안보리의 기존 대북제재에 일몰 조항을 넣자는 주장도 황당하다. 북한이 마음대로 도발을 일삼도록 고삐를 풀어주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다양한 도발과 제재 위반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며 북한을 두둔해 왔다.

특히 지난해 9월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성사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러 유착이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대량으로 지원받으면서 러시아의 친북 행보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단되면 대북제재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 수단을 잃게 되고, 북한에도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강하게 항의하는 것은 물론 시급히 보완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도 기존 제재는 유효한 만큼 앞으로 유엔 회원국들의 대북제재 이행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쏟아야 한다. 해체되는 전문가 패널과는 별도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활용할 방안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