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규직, 생산직 중산층의 문 닫히나...'한국 제조업 심장'에 들이댄 청진기[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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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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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한국 제조업의 심장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대 생산기지로 중화학공업의 대표 격인 자동차·조선·석유화학 3대 산업 메카인 울산은 지역내총생산(GRDP)과 1인당 총소득 기준으로 1위(2021년) 도시다. 글로벌 판매량 3위를 자랑하는 현대자동차그룹, 세계 1위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 등 간판 대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울산이지만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의 지은이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이 도시가 쇠락하는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도 승승장구했던 울산의 인구는 119만으로 정점을 찍었던 2015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3대 산업에 청년층 정규직 신규 고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들은 청년을 잡겠다고, 또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겠다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지역 대학들은 3대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 주도 산업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3월 울산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000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건조 중인 모습,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은 아파트 36층 높이인 109m로 한 번에 최대 들 수 있는 중량이 1천290t(톤)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제공,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울산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000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건조 중인 모습,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은 아파트 36층 높이인 109m로 한 번에 최대 들 수 있는 중량이 1천290t(톤)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제공, 연합뉴스]

『울산 디스토피아…』는 ‘대한민국 산업수도’인 울산의 현주소를 냉철히 분석해,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에 닥친 위기의 본질과 과제를 살펴보고 울산과 한국의 미래를 모색하는 책이다. 지은이 양 교수는 조선소에서 5년간 일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토대로 2019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 산업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펴낸 바 있다.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래 그동안 거침없이 달려왔던 울산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제일 큰 문제는 울산이 담당하는 3대 산업의 두뇌 즉 구상기능을 담당하는 연구소와 엔지니어링센터가 더 우수한 두뇌를 얻기 위해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전했고 나머지 부분도 상경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구상과 실행의 분리, 공간 분업’으로 제조업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획 및 연구개발 기능이 줄면서 울산은 제조업의 모든 기능을 갖고 있던 산업도시에서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현대자동차는 애초 울산에 있던 연구소를 1990년대 경기도 용인 마북연구소로 옮겼으며 이후 기아자동차 연구소까지 통합해 2003년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로 이전했다. 남양연구소의 확대 이전으로 대다수 부품사가 원청과의 연구개발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수도권인 판교에 글로벌R&D센터를 두고 있다.

지난해 '2023 울산공업축제' 거리 퍼레이드에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2023 울산공업축제' 거리 퍼레이드에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많은 기업이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 대비해 고숙련 정규직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자동화, 표준화 장치나 로봇 그리고 하청 노동자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울산뿐 아니라 창원, 거제, 군산 등 모든 산업도시의 제조업이 공통으로 걷고 있는 길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2010년대부터 정규직 생산직 신입사원을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노동계급 중산층이 되기 위한 입장권인 정규직 생산직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었던 ‘생산성동맹’에도 금이 가고 있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과 복리후생으로 보상하고, 노동자는 숙련을 높이고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매진하는 관계가 생산성동맹이다. 울산의 3대 산업에선 적대적 노사 관계로 이 동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구조적인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지 못하면 도시의 활력은 떨어지고 매력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은 각자도생으로 살아남겠지만 이들이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울산 지역과 시민들은 점점 더 힘든 상황에 빠져들 것이다.

이 책은 울산의 미래를 예리하게 들여다보고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 대안들도 제시했다. 울산을 비롯한 다른 산업도시들이 눈여겨봐야 할 점들이 많다. 미국의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 영국의 맨체스터나 글래스고 등 서구 산업도시들이 걸어갔던 쇠락의 길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면밀한 분석과 시의적절한 처방이 나와야 할 것이다. 『울산 디스토피아…』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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