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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의 예상은 틀렸다...'신냉전 체제' 자유주의 동맹은 가능할까[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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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마틴 울프 지음
고한석 옮김
페이지2북스

벌써 35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역사의 종말’이란 대담한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종말은 대재앙이나 종교적 종말론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옛 소련 등 공산주의와의 이념 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는 선언이었다. 후쿠야마는 이런 생각을 정리해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란 제목의 책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의 이념적 진화는 마침표를 찍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인 정부 형태로서 보편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역사의 전개 과정은 후쿠야마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흘러갔다.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서구적 가치에 도전하는 세력이 지속해서 등장했다. 민주주의 본고장을 자처하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이나 ‘브렉시트’라고 불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이 대표적이다. 후쿠야마의 단선적인 세계관은 21세기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설득력을 잃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28일 뉴욕시 경찰 조너선 딜러의 장례식 참석 후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28일 뉴욕시 경찰 조너선 딜러의 장례식 참석 후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논설위원인 저자는 이런 현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저자도 후쿠야마와 마찬가지로 옛 공산권의 붕괴를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사건”으로 봤다. 그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확고히 자리매김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오늘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는 모두 병들어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 평론가보다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의 전도사’ 역할에 주력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탐구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보호되는, 신뢰에 기반한 경제와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시장경제와 민주정치 사이의 이 복잡한 관계는 무너지기 쉽다”고 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 28일 리조트 관련 화상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 28일 리조트 관련 화상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저자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동맹을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일종의 신냉전 체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에서 동맹이 없었다면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되면 중국·러시아 등과 서방 국가들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저자도 중국과 러시아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선 “영원히 협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푸틴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러시아와 서방의 협력은 언젠가 푸틴의 사망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시각이 담겨 있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백인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 진하게 묻어나는 부분은 이 책의 한계다. 예컨대 저자는 현대 서구 사회가 번영을 누리는 비결을 자유민주주의에서 찾지만, 그 이면에 있는 제국주의 침략이나 식민지 착취 같은 역사적으로 '불편한 진실'은 침묵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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