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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대사 사건, 공수처의 ‘불의타’ 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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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준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미스터리의 연속이다. 피의자 신분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는데 출국금지 조치가 걸려있었다. 대통령실은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야당이 고발장을 접수하는 사진은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도 말이다. 논란 끝에 간신히 출국하는가 싶더니, 부임 11일 만에 회의 참석 명분으로 되돌아왔다.

출국금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건 법조계의 오랜 과제다. 수사기관에 고발장이 들어왔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출국금지를 내리지 않는다. 사건의 경중과 수사 진척 상황을 따져 결정하는데 그 기준이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다. 운용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란 얘기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을 겨냥한 고발이 공수처에 쏟아졌지만, 김 전 처장은 재임 중 해외출장을 잘만 다녀왔다. “사건을 방치할 거라면 출국금지는 왜 했느냐”는 이 대사 측 불만에 일리가 없진 않다.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차량에 탄 모습. 김현동 기자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차량에 탄 모습. 김현동 기자

이종섭 대사를 언제 소환 조사할 지는 기약이 없다. 실은 수사 주체인 공수처가 방치돼서다. 올해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나란히 임기만료로 퇴직했다. 후임자 취임은 없었다. 여당이 공수처장으로 밀던 인물을 법조계가 반대해서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대타를 찾는 소동을 벌이다 지난달에야 후보자 2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는 민주당 정부가 설치한 공수처에 큰 미련이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수처에서도 촌극이 있었다. 처·차장 동반 퇴직으로 3인자인 수사1부장이 처장 직무대행(대행의 대행)을 맡았다. 수사1부장은 그 직후  검찰 재직 시절 비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사표를 냈다. 서열 4위인 수사 2부장이 처장 직대(대행의 대행의 대행)가 됐다. 그런데 웬걸. 사직 처리가 늦어진다고 수사1부장이 도로 복귀했다. 지금은 ‘대행의 대행’ 체제다.

리더십이 흔들리니 수사가 늘어지고, 소환이든, 기소든, 무혐의 처분이든 결정을 못 한다. 후임 처장에 누가 올지만 관심이 쏠린다. “처장 부재 하에서 수사 실무진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전직 공수처 관계자)이란 분석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공수처의 혼돈에 현 정권 역시 책임이 없지는 않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종섭 대사 사건을 공수처의 ‘불의타(不意打·예상하지 못한 사법시험 문제를 일컫는 법조계 관용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공수처와 야당의 내통·정치공작 의혹마저 제기한다. 그러나 성실하게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출제자 탓만 하고 있는 게 실상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