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GTX를 충청까지? 공약 건 후보 "기대감 줘야 이긴다" [지역후보 508명 공약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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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에 뛰어든 충청권의 A 후보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연장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출발해 서울 청량리, 삼성역 등을 지나 경기도 수원을 잇는 86㎞ 길이 노선을 본인 지역구까지 잇는 내용이다. A 후보는 실현가능성을 묻는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선거는 유권자에게 ‘언젠가 공약처럼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줘야 이긴다. 일단 대단한 공약을 내서 힘 있는 후보라고 각인시켜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GTX 노선 연장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지역에서 이만큼 관심을 끌 수 있는 공약이 없다”고 털어놨다.

선거에서 비전과 공수표(空手票)는 한끗 차이다. 구체적으로 검토하고도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 비전, 당선만 바라보고 내놓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면 공수표에 가깝다. 지역구 후보자가 “지역 숙원 사업을 해결하겠다”며 낸 공약 상당수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공약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지역구 254곳에 출마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제3지대’ 신당 주요 후보자 508명이 26일까지 유세 과정에서 밝힌 공약을 분석한 결과다. 정치권의 공약 이행을 평가하는 시민단체인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조언을 받아 ▶국회의원의 권한(입법권)으로 추진하기 어려우면서 ▶목표와 이행 방안의 구체성 ▶재원 조달 방안 ▶공약 달성 기한을 밝히지 못한 공약 665개를 부실 공약으로 분류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철도·지하철·공항·도로 분야 교통 공약은 지역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쳐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다. 그만큼 부실 공약(249개·37.4%)도 많았다. 최재형(서울 종로구·국민의힘) 후보는 ‘GTX-E 노선 평창동역 신속 개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1년 착공한 GTX-A 일부 노선(수서-동탄)이 최근 개통한 만큼 E 노선은 개통까지 최소 10~20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GTX-D 노선 신림역 신설’을 내건 정태호(서울 관악을·민주당) 후보, ‘GTX-C 노선 조기 개통’을 추진하는 이재강(경기 의정부을·민주당) 후보, ‘GTX-C 노선 연장’을 약속한 신범철(천안갑·국민의힘) 후보, 이정문(천안병·민주당) 후보, 김영석(아산갑·국민의힘) 후보, 복기왕(아산갑·민주당) 후보도 GTX 공약을 앞세웠다.

‘작전·서운동 지하철역 신설’을 약속한 이재명(인천 계양을·민주당) 후보, ‘부산진-자성대-문현 연결 지하철 건설’을 발표한 곽규택(부산 서구동구·국민의힘) 후보는 지하철 확충을 공약으로 걸었다. ‘제천-영월-삼척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유상범(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국민의힘) 후보, ‘여수고속도로 건설’을 미는 조계원(여수을·민주당) 후보는 도로 공약을 발표했다. 예산은 물론, 소요 기간 등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빠진 데다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지는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거쳐야 할 수도 있는 공약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교통 공약 대부분은 국회의원의 권한을 넘는 국토교통부 소관”이라며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라면 쉽게 추진했을 텐데 지역 ‘숙원’ 사업으로 남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배재대(정치학) 석좌교수는 교통 공약에 대해 “의원이 일방적인 주장을 이어가더라도 국회 기록으로 남는 데다, 예타 대상에만 올려도 ‘숟가락’ 얹기 좋다”며 “여러 지역구와 얽힌 경우가 많고 대규모 예산을 들여 장기간 추진해야 하는 만큼 지역구 차원에서 임기 내 달성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무상 시리즈’가 상징하는 복지 공약(173개·26.0%)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월 3만원 청년 패스 대중교통 무제한 도입 추진’ 공약을 내건 민주당 소속 정명희(부산 북구을) 후보, ‘마을 점심 무상급식, 마을 전용 무상버스 도입’을 약속한 최재관(경기 여주양평) 후보가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소속은 ‘경로당 주 7회 점심 제공’을 공약한 김은혜(성남 분당을) 후보, 구자근(경북 구미갑) 후보, ‘기초연금 외 60~90세 월 20만~40만원 지급’을 추진하는 곽봉근(전남 해남완도진도) 후보 등이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이 빠졌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 재정이 부실한 상황에서 당장 유권자 손에 돈을 쥐여주는 식의 공약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라며 “공약을 낼 때 재원 마련 대책을 함께 제시하는 ‘페이 고(pay-go)’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숙원일지 몰라도 타당성이 떨어지는 복지 공약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의학고 신설’을 약속한 신동환(대구 북구을·민주당) 후보, ‘잠실중 2캠퍼스 설립’을 공약한 여야 박정훈·조재희(서울 송파갑) 후보가 그렇다. 잠실중 공약의 경우 민원이 심한 신천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도보로 10~20분 내 이동할 수 있는 중학교가 4곳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가까운 일부 중학교 진학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잠실중 2캠퍼스 신설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예산 문제로 쉽지 않다. 분교 설립의 명분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대학·쇼핑몰을 유치해 지역을 살리겠다는 경제 공약(125개·18.8%) 은 후보자의 일방적인 선언에 가까웠다. ‘제3 롯데월드(가칭) 유치’를 내건 김성원(경기 동두천양주연천을·국민의힘) 후보, ‘현대차 친환경차 생산 공장, 스타필드 안산 유치’를 공약한 김명연(경기 안산병·국민의힘) 후보, ‘삼성바이오로직스 유치’를 추진하는 김동원(청주 흥덕·국민의힘) 후보가 대표적이다. 각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공약에 대해 해당 기업은 “결정된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심지어 ‘TSMC·엔비디아·ASML 등 글로벌 대기업 유치’를 내건 양향자(경기 용인갑·개혁신당) 후보, ‘해리포터 스튜디오 유치’를 약속한 박상수(인천 서구갑·국민의힘) 후보도 있다. 대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양 후보는 “(삼성전자에서 오래 일한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다. TSMC 등 기업을 임기 내 100%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측과 협의한 건 아니다. 일본 오사카 스튜디오 사례를 참고해 낸 아이디어 차원의 공약”이라며 “낙후한 공장 지대를 밀어내고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도시정비 공약(95개·14.3%)은 행정구역 개편을 앞세운 경우가 많았다. 국민의힘 소속인 김복덕(경기 부천갑), 박성중(경기 부천을), 하종대(경기 부천병) 후보가 ‘부천시 서울 편입’, 김기남(경기 광명갑) 후보가 ‘광명시 서울 편입’, 한창섭(경기 고양갑) 후보가 ‘고양시 덕양구 서울 편입’, 민주당 소속 갈상돈(경남 진주갑) 후보가 ‘ 진주·사천·산청 통합’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행정구역 개편은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주민 투표를 거치거나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지역에 따라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해당 지역구 표심만 노리고 추진했다가 인근 지역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 추진 공약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영향으로 21대 총선 대비 줄었다.

부실한 지역구 공약은 구체성, 실현 가능성도 떨어지지만 공약 달성 기한마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년, 100년이 지나도 이룰 수 있을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공약을 두고 ‘희망 모음집’이라고 부른다”며 “공약에 철학과 가치, 비전이 없다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입법권’으로 할 수 있는 공약인지부터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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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시즌마다 부실한 지역구 공약을 남발하고, 선거가 끝나면 모른 척하는 행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선거법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66조는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공약에 사업 목표와 우선순위, 이행 절차, 기한,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게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총선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총선 공약에도 구체적인 입법 계획과 소요 예산을 담도록 해야 한다”며 “총선 이후 당선자가 공약을 이행했는지 검증한 뒤 다음 선거에 표로 반영하는 것이 선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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