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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대한제국 시사만화부터 'K-콘텐트 원천' 웹툰까지 한국 만화 발자취 따라가볼까

중앙일보

입력

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황민하(경기도 부천동곡초 6)·이서준(경기도 평촌초 6·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아 한국 만화의 발전 과정을 살폈다.

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황민하(경기도 부천동곡초 6)·이서준(경기도 평촌초 6·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아 한국 만화의 발전 과정을 살폈다.

훈이·오혜성·둘리·하니·연·장그래 손잡고 시대와 함께 울고 웃었던 만화 속으로  

1·2편 도합 약 26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국내 시청률 16.5%를 기록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공통점은 웹툰, 즉 만화가 원작이라는 겁니다. 한국 만화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요. 또한 만화가 웹툰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아 한국 만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아봤어요.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는 만화(漫畫)는 이야기를 간결하고 익살스럽게 그려 대화를 삽입한 그림 혹은 사물·현상의 특징을 과장해 인생·사회를 풍자·비판하는 그림을 말해요. 소중 친구들은 만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나요. 높은 확률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웹툰을 떠올릴 텐데요. 여러분의 부모님은 만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잡지·신문 등에 연재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지면 만화를 떠올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만화의 정의와 발전상은 시대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하죠. 이서준·최은서·황민하 학생기자가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 갔습니다. 2001년 개관한 한국만화박물관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만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 및 보관해 온 만화 전문 박물관이에요. 3층 한국만화 역사 전시관과 4층 만화 체험 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부터 2000년대 웹툰까지 한국 만화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죠.

최초의 근대 한국 만화인 이도영 화가의 '삽화'를 살펴본 최은서 학생기자. 우리나라 근대 만화는 신문과 함께 시작했다.

최초의 근대 한국 만화인 이도영 화가의 '삽화'를 살펴본 최은서 학생기자. 우리나라 근대 만화는 신문과 함께 시작했다.

1900년대 초중반: 신문과 함께 시작된 근대 만화  

은서 학생기자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만화는 무엇인지" 궁금해했는데, 이상혁 매니저와 한국만화 역사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그 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1909년 6월 2일 신문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가의 1컷 시사만화 '삽화'죠. 연미복을 입은 신사의 그림과 대한민보라는 단어를 4행시로 풀어낸 글을 통해 대한민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밝힌 만화예요. 즉, 우리나라 근대만화는 신문이라는 종이매체와 함께 시작된 거죠. 이와 함께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만화가 발전했는데요.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 이후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만화 제작도 제동이 걸렸어요.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총독부는 1910년대 무단통치 기간에 민족 신문을 모두 없앴죠.

하지만 1919년 3·1운동 후 조선총독부는 세계 여론을 의식하고 한민족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1920년대부터 신문·잡지 발행을 제한적으로 허가했고, 이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비평하는 만문만화가 신문에 연재됐죠. 검열이 철저히 이뤄지던 시대이니만큼 일제에 직접적인 비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만문만화에는 당시 시대상이 담겨있어요. 이 매니저가 1928년 한 신문에 실린 만문만화를 가리켰습니다. 전차 안에서 황금 시계와 보석 반지를 자랑하기 위해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던 걸의 허영심을 풍자한 '모던 걸의 장신 운동'이라는 제목의 만문만화였죠.

대한제국부터 시작된 근대 만화의 씨앗은 일제강점기에도 조금씩 싹을 틔우는 중이었어요.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1937) 개전 이후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황국신민화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한글신문이나 잡지 등이 줄줄이 폐간됐어요. 이에 따라 한글신문·잡지에서 연재되던 각종 만화도 자취를 감추게 되죠.

한국전쟁 중에도 만화는 명맥을 이어갔다. 1952년 발행된 『해적섬』 단행본. 비행기를 납치하고 상선을 폭파하는 괴한 일당과 대결하는 철호 형제의 모험을 그린 액션물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만화는 명맥을 이어갔다. 1952년 발행된 『해적섬』 단행본. 비행기를 납치하고 상선을 폭파하는 괴한 일당과 대결하는 철호 형제의 모험을 그린 액션물이다.

1945~1959: 광복과 한국전쟁이 만화에 미친 영향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광복을 맞이하면서 드디어 한국어로 신문·잡지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표현의 자유를 되찾은 만화가들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어요. 1946년에는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이 담긴 이야기인 『토끼와 원숭이』가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발행됐죠. 『토끼와 원숭이』는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만화 단행본이기도 해요.

한창 성장하던 한국 만화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북한군의 침략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은 피난민들은 대구·부산까지 내려갔죠. 하지만 만화는 전쟁통에서도 명맥을 이어갑니다. "전쟁통에 만화를 종이에 인쇄해서 대량으로 판매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미 사용한 종이를 재료로 만든 재생종이에 인쇄해 20페이지 내외 분량으로 엮은 만화가 대구·부산 등에서 유통됐어요. 이걸 '딱지본 만화' 혹은 '떼기 만화'라고 해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책방이 아닌 길에 돗자리를 깔고 판매하곤 했죠." 우리나라 최초의 공상과학만화인 『헨델박사』(1952)가 발간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1000년 뒤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지구단과 헨델박사의 싸움을 그린 작품으로 딱지본 만화에 속해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전후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는데요. 이때 만화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만화학생』 『7천국』 등 새로운 만화 잡지가 창간됐고, 신문에도 연재만화는 빠질 수 없는 코너로 자리 잡았죠. 『날쌘돌이』 『엄마 찾아 삼만리』 등 장편 만화가 출간돼 인기를 얻기도 했죠. 만화의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1950년대 후반에는 만화방이 등장했어요.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말기 태동한 한국 근대 만화부터 2000년대 웹툰까지 한국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말기 태동한 한국 근대 만화부터 2000년대 웹툰까지 한국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1960~1970년대: 만화방의 확대와 사전심의 제도 등장  

1950년대 말 등장한 만화방은 1960년대에 전국적으로 확대됐어요. 당시에는 먼 미래였던 22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만화인 『라이파이』(1959), 재일교포 훈이의 울분이 일본 권투계를 뒤흔드는 이야기 『도전자』(1964) 등의 작품들이 만화방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1960년대 중반에는 전국에서 하루에도 수백 개의 만화방이 생겨나고, 50여 권씩 만화책이 쏟아져 나올 만큼 만화산업의 규모는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 갑니다. 1959년 전국 2000곳이던 만화방이 1960년대 말에는 1만9000곳으로 9.5배나 증가할 정도였죠. 1960년대에는 공공 도서관이 많이 없었고,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드물었죠. 그래서 동네 만화방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인기 장소였어요.

한국만화박물관에는 당시 만화방을 재현한 '땡이네 만화가게'라는 포토존이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만화책은 물론, 작은 구식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었죠. 이 매니저가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드물었기 때문에 만화방 가게 내부나 주인집 마루에 놓인 텔레비전을 통해 권투 경기 등을 보는 것이 큰 문화행사였어요"라며 동네의 대중문화 사랑방 역할을 했던 당시 만화방의 위상을 알려줬죠.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은 이서준·황민하·최은서(왼쪽부터) 학생기자가 한국 만화 발전 과정에 등장한 캐릭터들과 포즈를 취했다.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은 이서준·황민하·최은서(왼쪽부터) 학생기자가 한국 만화 발전 과정에 등장한 캐릭터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렇게 사랑받던 만화는 정부의 사전심의 제도로 또 한 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8년 창설된 문화공보부 산하의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는 어린이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화의 소재·내용은 물론 만화책의 재질·판형·편수·분량까지 통제를 시작했죠.

전시실에서는 이 시기 출간된 양돈이의 좌충우돌 학창시절을 그린 『양돈전』(1969)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단행본의 크기가 기존에 통용되던 '국판(210x148mm)'이 아닌 검열 기준에 적합한 '4x6배판(257x182mm)'이었죠. "이 시기에는 검열 때문에 풍자 성격이 강한 만화는 제약받았어요. 그래서 스포츠만화, SF만화, 순정만화, 명랑만화 등 한정적인 장르의 만화가 주로 출간됐죠."

정부의 통제와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대중적 인기 속에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이를 발판 삼아 1970년대는 일간지 극만화, 어린이 잡지 부록 만화, 만화 전집류 등 만화업계의 양적인 성장이 진행됐죠.

여러 작가가 그린 각각의 만화를 한 권의 잡지로 모아 주간·월간 등 일정한 주기로 발행했던 만화잡지를 살펴보는 황민하 학생기자.

여러 작가가 그린 각각의 만화를 한 권의 잡지로 모아 주간·월간 등 일정한 주기로 발행했던 만화잡지를 살펴보는 황민하 학생기자.

1980~1989년: 경제적 성장이 만든 만화계의 황금기  

아기 공룡 둘리가 소시민 고길동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그린 '아기공룡 둘리', 엄마를 여의고 홀로 아파트 옥탑방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하니의 이야기를 담은 '달려라 하니'는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이죠. 이들의 출발점은 만화잡지입니다.

1980년대에는 경제 고도성장에 힘입어 『보물섬』 『만화광장』 『주간만화』 『르네상스』 『아이큐 점프』 등 여러 만화잡지가 창간됐어요. 특히 1982년 창간된 『보물섬』에는 김수정 작가가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 작가가 '달려라 하니'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죠. 만화잡지에서의 성공은 단행본 발행은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으로도 이어졌어요.

1970년대 고교야구의 인기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으로 이어지며 스포츠만화, 특히 야구만화 붐을 일으켰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같은 해 출간된 『공포의 외인구단』 단행본을 살펴봤는데요. 까치머리 오혜성과 여주인공 최엄지, 그리고 천재 타자 마동탁의 사랑과 승리를 향한 이야기를 담았죠. 이야기에 불륜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돼 당시 검열을 통과하기 힘든 작품이었음에도 만화방에서 선풍적인 인기였고, 검열 담당자가 '너무 재미있어 다음 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 입장이 돼 미처 검열에 신경 쓰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였죠.

1980년대는 독재정권이 여전히 서슬 퍼렇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항의해 5·18 민주화 운동(1980)과 6월 항쟁(1987) 등이 일어났죠. 한국 만화 역시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독재정권을 비판한 정치 풍자만화인 주완수 작가의 『보통 고릴라』처럼 사회 비판적 만화들도 많은 호응을 얻었어요.

한국 만화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는 어린이·청소년·10대 소녀·성인 등 독자층을 세분화해 다양한 종류의 만화잡지가 발행됐다.

한국 만화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는 어린이·청소년·10대 소녀·성인 등 독자층을 세분화해 다양한 종류의 만화잡지가 발행됐다.

1990년대: 만화잡지 전성시대, 한국 만화의 황금기

민주화 운동이 성과를 거둬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1993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등 1990년대 한국 사회는 안정기로 접어들었어요. 만화계 역시 질적·양적 성장을 거듭했죠. 커진 시장 규모에 맞춰 만화잡지 역시 독자층을 세분화해 다양하게 발간됐어요. 아동을 겨냥한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요요』 『미르』 『댕기』 『나나』, 청소년을 겨냥한 『영챔프』 『영점프』 『윙크』, 성인을 겨냥한 『투엔티세븐』 『빅점프』 『미스터 블루』 등이죠.

만화잡지는 여러 작가가 그린 각각의 만화를 한 권의 잡지로 모아 주간·월간 등 일정한 주기로 발행하는 형태인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당시 발간된 만화잡지들을 살펴보며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하나의 만화만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스크롤을 내려 한 회씩 웹툰을 보는 것과 다른 방식이라며 신기해했죠.

김진 작가가 1992년부터 만화잡지 『댕기』에 연재한 만화 『바람의 나라』(사진 7)는 1996년에는 온라인 게임, 2008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된 '미디어 믹스'의 좋은 사례다. ⓒ이코믹스, KBS

김진 작가가 1992년부터 만화잡지 『댕기』에 연재한 만화 『바람의 나라』(사진 7)는 1996년에는 온라인 게임, 2008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된 '미디어 믹스'의 좋은 사례다. ⓒ이코믹스, KBS

만화는 다른 문화 산업 장르와 결합해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 믹스'가 가능한 장르입니다. 앞서 198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이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 만들어졌듯, 1990년대에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있었어요. 대표적인 예로 김진 작가가 그린 『바람의 나라』를 들 수 있죠. 고구려 시대 대무신왕과 그의 아들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중심인 판타지 만화 『바람의 나라』는 1992년부터 만화잡지 『댕기』에 연재했는데, 1996년 넥슨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로 재탄생했죠. 또 2008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돼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어요. 역시 1993년부터 『댕기』에 연재한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는 영국 미남배우 라이더 베이와 작가 지망생 엘리 지가 우연히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순정만화인데요. 2004년 KBS 드라마로 제작·방영돼 큰 화제가 됐죠.

웹툰은 종이에 펜으로 원고를 그리는 지면 만화와는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태블릿에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웹툰은 종이에 펜으로 원고를 그리는 지면 만화와는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태블릿에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2000년대: 웹툰, 한국 만화시장의 대세가 되다  

2000년대에 들어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등장했어요. 웹툰은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포털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만화를 뜻하죠. 웹툰의 태동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입니다. 1990년대 말에 개인이 홈페이지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이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반응을 얻은 것이 시초죠.

민하 학생기자가 "웹툰과 기존 지면 만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이 매니저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커다란 마우스와 모니터가 있는 통로로 데려갔죠. 마우스의 휠을 굴리자 모니터 속의 웹툰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어요. "지금 보신 것처럼 웹툰은 책의 페이지를 넘겨보는 형식이 아닌, 마우스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모니터 화면의 웹툰을 밑으로 내려가면서 보는 것이 특징이에요."

이 매니저가 설명한 웹툰의 특징은 연출에도 영향을 미쳐 '스크롤 연출'이 나타납니다. 지면 만화는 장면이 해당 칸이나 페이지에 국한되죠. 반면 웹툰은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따라 진행되는 가상의 공간이 기반이라, 시공간의 흐름과 캐릭터의 동선 등에 있어 칸이나 길이의 제약이 적어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는 누계 클릭 수 6000만을 돌파하며 웹툰 시대를 열었다. 『순정만화』에서 활용된 스크롤 연출은 이후 한국 웹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 '순정만화'. 이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영화 제작이 활발해졌다. ⓒ재미주의, CJ ENM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는 누계 클릭 수 6000만을 돌파하며 웹툰 시대를 열었다. 『순정만화』에서 활용된 스크롤 연출은 이후 한국 웹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 '순정만화'. 이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영화 제작이 활발해졌다. ⓒ재미주의, CJ ENM

2003년 나온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는 누계 클릭 수 6000만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웹툰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순정만화』는 스크롤 연출을 잘 활용해 호평받았고, 그러한 스크롤 연출은 이후 한국 웹툰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앞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드라마 등이 성공을 거뒀던 것은 웹툰의 시대가 열리면서 웹툰으로 넘어왔습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영화·게임 등은 물론 각종 캐릭터 상품도 큰 인기를 얻었죠.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한 건 2010년대부터예요. 2013년 개봉해 6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4년 tvN에서 방영돼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은 드라마 '미생' 모두 웹툰이 원작이죠. 1편(2017년)과 2편(2018년) 도합 약 26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2020년 국내에서 시청률 16.5%를 기록했으며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도 그중 하나죠. 즉, 만화와 웹툰은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콘텐트의 원천이자 뼈대로 활약 중인 겁니다.

광진 작가의 웹툰 『이태원 클라쓰』는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전과자와 친구들이 창업을 시작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태원 클라쓰』는 2020년 JTBC 드라마로 방영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영컴, JTBC

광진 작가의 웹툰 『이태원 클라쓰』는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전과자와 친구들이 창업을 시작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태원 클라쓰』는 2020년 JTBC 드라마로 방영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영컴, JTBC

서준 학생기자가 "현재 한국 만화산업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공개한 '2022 만화 산업 백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6%가 최근 1년간 웹툰만 이용했다고 답했어요. 웹툰과 출판만화를 모두 이용했다고 답한 비율은 25.9%, 출판만화만 이용했다고 답한 비율은 2.5%예요. 그런데 출판 만화에는 웹툰 단행본도 포함됩니다. 그러니 웹툰 콘텐트가 한국 만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죠. 웹툰은 현재 만화산업의 미래예요."

신문과 함께 태동한 한국 최초의 근대 만화부터 K-콘텐트의 심장 역할을 하는 웹툰까지. 100여 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들여다봤어요. 만화의 발전상이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앞으로 만화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요. 여러분도 함께 상상해 보세요.

대한제국 말부터 일제강점기·광복·한국전쟁·경제발전·민주화 등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 발전한 한국 만화에 대해 알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대한제국 말부터 일제강점기·광복·한국전쟁·경제발전·민주화 등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 발전한 한국 만화에 대해 알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만화도 문화재라고?

시사만화

한국만화박물관에 있는 시사만화의 거장 고(故) 박기정 작가의 전시실을 둘러본 이서준 학생기자. 박 작가는 33년간 우리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시사만평으로 기록했다.

한국만화박물관에 있는 시사만화의 거장 고(故) 박기정 작가의 전시실을 둘러본 이서준 학생기자. 박 작가는 33년간 우리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시사만평으로 기록했다.

국내 최초의 만화는 신문과 함께 시작했다고 했죠. 이렇게 신문에서 연재되는 만화 중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명맥을 이어온 장르가 바로 시사만화랍니다. 시사만화는 정치·경제·사회 등을 아울러 민감한 사안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하는 장르로, 주로 신문·잡지 등 시사적 매체에 한 칸 또는 네 칸 만화 형식으로 실려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고바우 영감' 역시 여러 신문을 통해 연재된 시사만화죠.

한국만화박물관에는 한국 시사만화의 거장 고(故) 박기정(1935~2022) 작가의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요. 고교 시절 중앙 일간지에 독자 투고 형식으로 시사만화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8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2011년 퇴직하기까지 33년 동안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1컷짜리 시사만평으로 기록했죠. 시사만화는 당대 중요한 사건을 다뤄 만화로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해당 날짜에 발행된 신문 속 시사만화를 통해 살펴보세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한국만화박물관에서 한국만화의 역사를 알아보며 여러 작품을 봤어요. 들어보지도 못한 만화들이 대다수였지만 중간중간 '아기공룡 둘리' '이태원 클라쓰' 등 몇몇 반가운 만화들도 보였죠. 엄마·아빠 세대 만화잡지인 『보물섬』부터 내가 즐겨보는 웹툰까지 한국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문화재로 지정된 만화 중 '고바우 영감'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50년 동안 시사만평을 남겼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죠. 또 『엄마 찾아 삼만리』는 무려 10쇄까지 발행했고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대요. 저는 예전에는 일본이 만화산업에서는 따라갈 나라가 없는 초강대국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한국도 현재는 웹툰으로 나름 큰 만화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를 전시실에서 살펴봤는데, 1970~1990년대까지는 생전 처음 보는 만화들이 많았는데 웹툰전시관으로 들어서니 '마음의 소리' '이태원 클라쓰' '미생' 등 아는 작품들도 많아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상혁 매니저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한국 만화의 역사가 이해가 더 잘됐죠. 취재 후 개인적으로 2층에 있는 만화 도서관에도 갔는데 상설전시관에서 내용이 궁금한 만화가 있으면 여기에서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이서준(경기도 평촌초 6) 학생기자

한국 만화의 발전상에 대한 취재를 위해 한국만화박물관을 방문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되고 첫 취재가 제가 좋아하는 만화라니! 그것도 옛날부터 오늘날까지의 만화라니 더욱 설렜죠. 박물관에 들어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죠. 저는 이상혁 매니저님이 설명하신 여러 만화 중 『바람의 나라』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게임과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만화죠. 저도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어요. 박물관 3층 한국만화 역사 전시관과 4층 만화체험 전시관에는 웹툰 그리기 등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옛날 만화부터 오늘날 만화까지 많은 자료를 모은 전시실도 있었어요. 또 만화 도서관도 있어서 저는 취재를 마치고 그곳에서 『흔한남매』를 재미있게 읽고 귀가했어요. 소중 친구들도 한국만화박물관에 가면 엄청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가족과 함께 다시 방문하기를 다짐하며 돌아왔답니다.

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 학생기자

취재를 위해 한국만화박물관에 다녀왔어요.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문화재로 지정된 만화와 대한제국 말기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인기 만화 등을 둘러볼 수 있어요.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과 '엄마 찾아 삼만리' 『토끼와 원숭이』 『코주부 삼국지』가 작품성·문화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해요. 1960년대에는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는 것 외에 텔레비전으로 권투를 보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당시에는 스포츠 장르를 다루는 스포츠 만화가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한국 만화의 역사와 과거에 인기 있었던 만화 장르 등을 알게 돼 재미있었어요.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한국만화박물관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황민하(경기도 부천동곡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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