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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러시아 부활 위해…유권자들 '푸틴 독재' 6년 연장 수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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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호 10면

러시아 전문가 홍완석 교수가 본 푸틴 5기 집권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21일 외교의 자율성을 언급하면서 “악화되고 있는 한·러 관계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21일 외교의 자율성을 언급하면서 “악화되고 있는 한·러 관계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다. 득표율 87%가 넘는 압승이었다. 투명 투표함 등 일부 논란이 있긴 했지만 서방의 평가와는 달리 러시아 유권자들이 푸틴에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다. 푸틴은 이번 대선으로 2030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됐다. 임기를 마치면 집권 기간이 30년이나 된다. 러시아인들은 왜 인권 탄압을 자행하면서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푸틴을 지지할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의 대외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지난 21일 러시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크렘린 주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최고 권력자가 크렘린에서 물러나는 경우는 죽거나 쫓겨나거나 두 가지뿐이다.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블라디미르 레닌은 죽어서 크렘린을 나왔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사실상 쫓겨난 케이스다. 이는 러시아에서는 권력자가 쉽게 권력을 놓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푸틴도 이에 해당된다. 사실 이번 러시아 대선의 의미는 ‘푸틴주의’에 동의하느냐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푸틴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러시아의 안정과 경제성장,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조금 유보하려 하는데 이를 받아들이겠느냐’를 묻는 선거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러시아인들이 찬성한 것이다.”
푸틴이 87%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서방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런 득표율이 나오는 배경은.
“개인적으로 부정선거는 아니라고 본다. 서방의 시각으로 이번 대선을 보면 안 된다. 푸틴이 대승한 이유는 몇 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포위된 성채론’이다. 푸틴은 서방 국가들이 끊임없이 러시아를 포위하고 공격하려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유권자들에게 애국주의를 호소해왔다. 또 많은 러시아인들은 가슴 속에 제2차 세계대전 때 872일간 고립된 상태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레닌그라드 전투’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정서에 호소했던 것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둘째, 러시아인들은 ‘제국 증후군’을 갖고 있다. 강성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에 제동을 걸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러시아인들의 입장에선 제국의 힘을 보여줬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푸틴이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3.6%라는 실적을 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 시장이 도움을 줬기에 가능했다. 넷째, 푸틴의 대서방 정책이 매우 전략적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과거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년)으로 인한 10년 전쟁처럼 국력을 낭비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흑해 전체가 아닌 일부 지역만을 목표로 삼아 공략하는 등 국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21일 러시아 중앙선관위 모니터에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이 공개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21일 러시아 중앙선관위 모니터에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이 공개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전망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6·25 전쟁처럼 당사자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남는 것이다. 러시아가 점령지를 돌려주고 철수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전쟁 피로감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인색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협점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예측이지만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가 점령한 채, 나머지 지역은 중립지대 또는 나토와의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것이 현재로썬 가장 현실적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손을 뗄 경우 운신의 폭이 커진 러시아의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푸틴은 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기도 했다. 향후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단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미·러 관계는 상당히 악화될 것이다. 푸틴은 미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인해 바이든이 소속된 민주당과는 악연이 깊다. 반면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미·러 관계는 나아질 것이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외교 노선으로 인해 양국의 충돌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의 불확실성도 커질 것이다.”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흔히 동북아의 대립 구도를 한·미·일과 북·중·러로 보는 경우가 많다. 큰 틀에서는 맞을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두 그룹을 국가대표들로 구성된 연합팀으로 본다면 한·미·일은 같은 종목을 하는 3국 연합팀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북·중·러는 종목이 다른 선수들로 구성된 연합팀이다. 따라서 한·미·일에 비해 북·중·러가 국가 이익 측면에서 교집합이 훨씬 작다. 반미라는 깃발 아래 모이긴 했지만, 엇박자가 날 여지가 많다. 이런 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과 러시아가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러시아 정부가 한국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국가 이익 측면에서 남북한을 평가한다면 북한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고, 또 전쟁 물자까지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북한과의 밀착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극동지역 개발 등에 있어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한·러 관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좋지 않다. 관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이다.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우리 안보의 핵심은 한·미 동맹이다. 이 기조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좀 더 외교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외교의 자율성’ ‘외교의 내적 균형 강화’라고 부르고 싶다. 농구에는 피벗 플레이라는 것이 있다. 한 발을 고정하고 다른 발을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패스를 하거나 슛을 던지는 기술이다. 우리 외교에도 이런 기술의 도입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축으로 삼되 다른 발은 자율성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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