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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대출 갚기 위해 '희망의 땅'으로, 그렇게 만난 건 '오리'[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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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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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케이트 비턴 지음
김희진 옮김
김영사

만화가인 지은이는 20대 초였던 2005년 캐나다 중서부 에너지 산업 중심지인 앨버타에서 2년간 일했다. 이 그래픽 노블은 그런 자전적 경험을 담았다.

그래픽 노블은 스토리라인이 일반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만화다.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미국‧프랑스에선 인기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지은이는 꿈과 좌절, 희망과 실망, 남성중심사회의 모욕적인 처사와 폭력에 대한 분노와 홀로서기 시도 등 젊은이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거대 에너지 산업과 환경오염이라는 사회적 고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책 '오리들' . [사진 김영사]

책 '오리들' . [사진 김영사]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스무 살 지은이는 자신의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나고 자란 캐나다 동부를 떠나 중서부 유전 지대로 향한다. 고향 노바스코샤 지역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과거 수출로 지역 경제를 받치던 석탄과 철강 산업이 무너지면서 쇠락해졌다.

지은이는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이 이 지역의 유일한 ‘수출품’이 됐다고 자조한다. 사람들이 떠난 집에 덩그러니 남은 ‘빈 의자’는 가족과 지역의 상실 또는 해체를 말없이 웅변한다. 지방 정부의 세수가 전국 평균 이하라서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가진 것 없는 주’의 모습은 인구감소로 소멸위기에 빠진 한국 농어촌‧중소도시와 다르지 않다.

책 '오리들'. [사진 김영사]

책 '오리들'. [사진 김영사]

좋은 일자리, 좋은 돈벌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오일샌드 지역은 국제뉴스에서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중심이자 희망의 땅으로 묘사돼왔다. 오일샌드는 얕은 지층에 거의 고체에 가까운 원유가 묻은 돌‧점토‧모래를 가리킨다. 증기를 이용해 준고체 원유를 액체로 바꾼다. 채굴지에서 나온 오염수가 모여 시커먼 호수를 형성한다. 셰일층이라는 지하의 퇴적암층을 모래와 화학약품을 섞은 고압의 물로 분쇄(수압파쇄)해 그곳에 갇힌 천연가스와 원유를 채취하는 셰일가스 산업과 비교된다.

지은이는 이런 거대 에너지 산업의 그늘에 자리 잡은 인간들의 노동‧생존노력‧부조리‧젠더불평등‧외로움을 담담하게 그린다. 오일샌드 채굴지는 개인 생활이 거의 없고, 남성 지배 사회로 성희롱‧중독‧부조리가 판치는 곳이었다. 지은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의기소침하고 우울하며, 침울한 일상을 가감 없이 그렸다. 인간을 상품화하고 소외시키는 현장이다.

책 '오리들'. [사진 김영사]

책 '오리들'. [사진 김영사]

왜 제목이 ‘오리’일까. 먹이를 찾아 날아들었다가 오염된 연못에서 집단 폐사한 오리 떼를 목격한 지은이는 거대한 오일샌드 채굴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오리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오리 인간들은 외부에선 기회로 도색된 거대 에너지 산업의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상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이런 곳에서 노동자와 여성으로 겪은 이중고의 일상을 웹툰으로 기록하고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소통했다. 이 그래픽 노블은 이러한 지은이의 생존 기록이자 인류학적 관찰물이다. 희망을 찾기 위한 그런 몸부림이 있었기에 한 젊은이가 인간성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부제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 원제 Ducks: Two Years in the Oil S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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