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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24) 하후패가 등애에게 죽고 강유는 답중에 주둔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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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한중으로 물러났던 강유는 잔도를 수리하고 군량과 병기를 정비하는 한편, 수로(水路)를 오갈 전선까지 준비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강유는 표를 올려 출정을 요청했습니다. 후주가 망설이며 결정을 하지 못하자 초주가 아뢰었습니다.

신이 밤에 천문을 보니 서촉 분야의 장성(將星)이 어둠침침하고 밝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장군께서 또 출정하려고 하는데 이번에 가면 매우 불리합니다. 폐하! 조칙을 내리셔서 못 가게 막으소서.

우선 이번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 두고 봅시다. 과연 실수가 있으면 죽시 싸우지 못하도록 막겠소.

유선.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선.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유는 군사를 출동시키기 전에 요화에게 먼저 뺏어야 할 곳을 물었습니다. 요화가 등애의 지략이 뛰어나 함부로 볼 수 없다고 하자 강유는 벌컥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조양을 공격하기로 하고 명을 거스르는 자는 군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명령했습니다. 요화에게는 한중을 지키게 하고 직접 3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양으로 진격했습니다. 등애가 첩보를 입수하자 함께 있던 사마망이 말했습니다.

강유는 꾀가 많으니 조양으로 나가는 체하면서 실은 기산으로 쳐들어오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강유는 실제로 조양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공은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는가?

강유는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우리의 양곡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왔지만 지금 조양은 양곡이 없는 곳입니다. 강유는 우리가 양곡이 있는 기산 등지만 지키고 조양은 지키지 않을 줄 알고 조양으로 쳐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이 성을 빼앗는다면 군량을 쌓아두고 강인들과 연합하여 지구전을 펼치려는 속셈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한다?

이곳의 군사를 모두 거두어 두 갈래로 나누어 조양을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조양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후화라는 작은 성이 있는데 바로 조양의 목구멍 같은 요충입니다.

등애는 사마망과 계책을 협의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강유는 하후패를 전군으로 삼아 조양성을 공격도록 했습니다. 저만큼 조양성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성 위에는 깃발도 꽂혀 있지 않았고, 사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하후패는 의심이 들어 감히 성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부하 장수들이 대장군의 군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빈 성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성을 살펴보던 하후패는 많은 노인과 어린아이가 도망가는 것을 본 후에야 의심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등애의 계략이었습니다. 하후패가 기뻐하며 성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북과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깃발이 일어서고 적교가 올라갔습니다. 하후패가 계략에 빠졌음을 알고 물러가려 하였지만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하후패와 5백 명의 군사가 모두 성 밑에서 전사했습니다.

대담한 강유는 뛰어난 책략을 가졌지만  大膽姜維妙算長
등애가 대비할 줄을 누군들 알았으랴  誰知鄧艾暗提防
가련하도다 촉한에 투항했던 하후패가  可憐投漢夏候覇
순식간에 성 주변서 화살 맞아 죽는구나  頃刻城邊箭下亡

강유가 구원하여 인근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그날 밤, 등애가 후화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촉군 영채를 급습했습니다. 강유가 수습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강유는 겨우 빠져나와 20여리 물러나 영채를 세웠습니다. 두 차례나 연거푸 패하자 군심이 위태로웠습니다. 강유가 다시 군심을 다잡자 장익이 말했습니다.

위군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기산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이오. 장군께서는 이곳에서 등애와 겨루시며 조양과 후화를 공격하소서. 저는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기산을 공격하여 기산에 있는 아홉 개의 영채를 빼앗고 즉시 군사를 몰고 장안으로 쳐들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

강유는 장익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강유는 등애와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습니다. 등애는 강유가 계속해서 싸움을 걸어오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장익의 계략을 읽어냈습니다. 즉시 아들 등충을 불러 절대 나서서 싸우지 말고 지키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기산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날 밤 이경. 등애가 정예병을 이끌고 오자 강유는 장수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도록 명령했습니다. 등애는 강유의 영채에서 한 차례 정황을 탐색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곧장 기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강유도 등애의 전략을 간파했습니다.

등애가 건성으로 야간에 싸우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것은 필시 기산 영채를 구하러 가기 위한 수작일 것이다.

강유도 부첨을 불러 영채를 굳게 지키게 하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장익을 도우러 갔습니다. 장익은 기산에 도착하자 위군 영채를 공격했습니다. 위군은 군사가 적어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곧 무너지려 할 때에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한바탕 돌격전을 펼쳤습니다. 촉군은 크게 패해 퇴로마저 차단당해 위급해졌습니다.

이때, 함성이 진동하며 북과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얼핏 보니 위군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장익도 기세를 몰아 다시 공격했습니다, 등애도 패하고 급히 기산 영채로 도망쳤습니다. 강유는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장면을 바꿔 후주가 있는 성도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후주 유선은 환관 황호의 말만 믿으며 밤낮으로 주색에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에 유염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 호씨가 아주 미인이었습니다.

호씨가 황후를 뵈러 궁중에 들어갔는데 황후가 붙잡고 지내다 달포가 지나서야 보냈습니다. 그러자 유염은 아내가 후주와 간통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막하의 군사 5백 명을 세워놓고 아내를 꽁꽁 묶은 다음 군사들에게 신발을 던져 수십 차례씩 얼굴을 때리게 했습니다. 후주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유염의 죄를 묻도록 했습니다. 담당관이 다음과 같이 죄목을 내렸습니다.

군사는 아내를 매질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얼굴은 형을 받을 곳이 아니다. 저잣거리에서 참수하여 버려두는 것이 마땅하다.

우장군 염우란 자는 작은 공도 없는데도 황호에게 아부하여 마침내 큰 벼슬을 얻은 자입니다. 그는 강유가 군사를 거느리고 기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호를 달래 후주에게 아뢰도록 했습니다.

강유는 여러 번 싸웠으나 공을 세운 것이 없습니다. 염우에게 대신하라고 명하소서.

후주는 황호의 말에 따라 조칙을 내렸습니다. 기산에서 위군을 공격하고 있던 강유는 하루에 세 차례나 조칙이 내려오자 군사를 물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유는 성도로 와서 후주를 만나려 했지만 열흘이나 뵐 수가 없었습니다. 비서랑 각정을 만나 물었습니다. 각정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대장군! 어째서 아직도 모르시오? 황호가 염우에게 공을 세우게 하기 위해 조정에 아뢰어 장군에게 돌아오라는 조칙을 내린 것이오. 그러다가 이제는 등애가 용병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 일도 중단하고 있습니다.

내 이 환관 놈을 기필코 죽여 버리겠소.

대장군께서는 무후의 일을 계승하여 중대한 직책을 맡고 계십니다. 어찌 경솔히 서두르시오? 그러다가 만약 천자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면 도리어 불미스럽게 될 것입니다.

후주의 비호를 받으며 강유에게 용서를 비는 황호. 출처=예슝(葉雄) 화백

후주의 비호를 받으며 강유에게 용서를 비는 황호.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유는 후주를 만나 눈물로 주청했습니다, 환관 황호도 처단할 것을 아뢰었습니다. 후주는 황호를 불러 강유에게 빌라고만 했습니다. 강유는 분을 억누르며 물러나 각정을 만나 의논했습니다. 각정이 강유에게 조언했습니다.

장군! 멀지 않아 큰 화를 당하게 되셨소이다. 장군이 만약 위험에 빠진다면 나라도 따라서 망하게 될 것이오.

선생! 국가도 보호하고 이 몸도 안전할 수 있는 방책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농서에 갈만한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답중이 그곳인데 매우 기름진 곳입니다. 그곳에서 둔전을 하면서 군사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보호하고 일신을 편하게 하는 방책입니다. 빨리 그렇게 하소서.

답중으로 몸을 피해 농사짓는 강유의 군사들. 출처=예슝(葉雄) 화백

답중으로 몸을 피해 농사짓는 강유의 군사들.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유는 즉시 후주의 재가를 받아 한중의 군사들을 분산 배치하고 자신은 8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답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강유의 장기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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