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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내내 멀미약 먹고 버텼다"…성공한 귀어인들의 조언 [바다로 간 회사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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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에 살다 충남 보령으로 귀어한 박성호씨가 대천항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서울에 살다 충남 보령으로 귀어한 박성호씨가 대천항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신진호 기자

가족과 보령에 정착한 박성호씨 "조급함 버려야"

"어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는 게 중요하고, 이웃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귀어학교 등에서 미리 배울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취재팀이 전국에서 만난 성공한 귀어인(歸漁人) 20여명은 후배 귀어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들 귀어인은 고기잡이배 선장과 선원으로 일하거나 양식업, 수산물유통, 낚싯배 운영까지 다양한 일에 종사했다. 귀어한 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이 넘은 베테랑까지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완전한 바닷사람이 된 듯했다. 이들은 귀어를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며 "바다는 아는 만큼 돌려준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던 박성호(43)씨는 2022년 3월 보령으로 내려와 현재 키조개잡이 배(일명 머구리배) 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맨 처음 배에 올랐을 때 12시간 내내 멀미만 했는데 선장님이 ‘너는 안 되겠다’라고 하길래 이를 악물고 두 달 내내 멀미약을 먹고 버텼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가 귀어한 용정우씨가 전남 해남 전복 양식장에서 전복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아마추어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가 귀어한 용정우씨가 전남 해남 전복 양식장에서 전복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선원으로 일하며 여름엔 해수욕장 아르바이트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배를 만나러 서천에 왔다가 “어촌에서 한 번 살아볼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던 그에게 “귀어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4주간 합숙하며 무료로 이론과 현장교육을 배운다는 말에 등록했다. 교육을 마친 그는 귀어학교 추천으로 평생 스승이 된 성복3호 김상태 선장을 만났다. 가족 모두 서울에서 보령으로 이사한 박씨는 어한기인 여름 휴가철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 레저보트를 운전하며 돈을 번다. 선원으로 일하고 아르바이트까지 겸하면 연간 8000만원 정도는 벌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박씨는 “어선을 몰며 한 달에 수백만원씩 매출을 올리는 귀어인을 보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간 쪽박차기 십상”이라며 "귀어학교도 다니는 등 일정 기간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으로 귀어한 홍태인씨가 자신의 이름을 타 건조한 '태인호'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서천으로 귀어한 홍태인씨가 자신의 이름을 타 건조한 '태인호'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신진호 기자

“주민들과 좋은 관계 유지 중요”

3년 전 충남 서천으로 내려온 홍태인(41)씨는 “어촌에서 살려면 현지 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씨는 "먼 바다로 나갈 때 작은 배 여러 척이 선단을 이룬다"라며 "정보를 공유하고 고장이 나면 조업을 중단하고 안전하게 포구까지 오려면 주변 어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지난 1월 3년간 모은 돈과 정부 정책자금을 합해 3t급 어선(태인호)을 장만했다.

10년 전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 정착해 낚시어선을 운영 중인 정충구씨(51)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귀어 초기 주민과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낯선 사람 등장에 경계하고 모임에도 배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결국 스스로가 해결하자는 취지로 해양 쓰레기를 치우는 활동에 참여하고 해경과 함께 해상 구조사 교육을 담당하는 주민과 친분을 쌓았다.

경기도 하남에서 수산물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이주성씨(49)는 “수산물을 모르는 사람이 내려와서 유통한다고 주민들이 무시하길래 계속 찾아가서 살갑게 했더니 겨우 마음을 여는 거 같았다”며 “겁을 먹지 말고 부딪히면서 도전하면 주변에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12시쯤 경남 사천시 서포면 중촌항에서 귀어 1년차 신병행(47·오른쪽)씨와 동갑내기 귀어 멘토 서성주(47)씨가 어선 '천궁호'를 점검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12시쯤 경남 사천시 서포면 중촌항에서 귀어 1년차 신병행(47·오른쪽)씨와 동갑내기 귀어 멘토 서성주(47)씨가 어선 '천궁호'를 점검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사천 동갑내기 서정주·신병행씨, 멘토·멘티  

경남 사천으로 지난해 귀어한 신병행(47)씨와 동갑내기 귀어 선배 서성주(47)씨는 귀어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바다 환경을 모르고 어선 구매부터 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서성주씨는 “작은 배라도 중형차 1대 값인데 무턱대고 정부 지원을 받아 구입했다가 젊은 나이에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까지는 적어도 2~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9년 일찍 귀어한 서씨가 멘토 역할을 맡아 신씨에게 수산물을 잡는 방법에서 어선과 어구 관리법까지 경험과 지식을 전수해줬다고 한다. 신씨는 지난 1월 어선 천궁호(0.49t)를 샀다.

인천 을왕동 선적의 보성호 선장인 김원중씨가 배를 몰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최모란 기자

인천 을왕동 선적의 보성호 선장인 김원중씨가 배를 몰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최모란 기자

경기도 하남에서 수산물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이주성씨가 포장된 문어를 선보이고 있다. 최모란 기자

경기도 하남에서 수산물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이주성씨가 포장된 문어를 선보이고 있다. 최모란 기자

인천 20대 선장 김원중씨 "선원부터 시작해야"  

인천 을왕동 선적의 보성호(7t) 선장인 김원중(28)씨도 “처음엔 투자보다 선원으로 일해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김씨는 어촌에서는 보기 드문 20대이지만 귀어 7년 차의 베테랑이다. 그는 대학생이던 2017년 어머니의 식당(횟집)에서 일하다 귀어를 결심했다.

가족의 반대에도 그는 새우잡이 배를 타면서 어부의 길로 들어섰다. 김씨는 "낙지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는 소문만 믿고 무작정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온 날도 있었다. 모두 경험이 부족한 탓이었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상우 어촌연구부장은 “어업은 농업과 달리 표준화된 기술이 있는 게 아니라 경험 때문에 기술이 축적되는 특성이 강하다”며 “어촌 현장에서 숙식하면서 귀어가 본인에게 맞는지 판단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어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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