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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22) 강유가 진법으로 등애를 죽이려 하자, 등애는 반간계로 위기를 벗어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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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의 대장군 손침은 전단과 당자 등이 위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게 노해 항복한 군사들의 가족을 모두 잡아다가 죽였습니다. 오의 주군인 손량은 16세였지만 총명했습니다. 그는 손침이 지나치게 살육을 일삼자 속으로 매우 마땅치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손침이 자신의 아우를 비롯한 측근들로 하여금 감시하니 손량도 어찌할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량의 처남인 황문시랑 전기와 단둘이 있게 되자 울면서 말했습니다.

손침은 국권을 틀어쥐고 멋대로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짐을 지나치게 업신여기고 있소. 지금 도모하지 않았다가는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오.

폐하께서 신을 쓰실 곳이 있다면 신은 만 번 죽는다 해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경은 이제 금군을 동원하여 장군 유승과 함께 각각 성문을 지키도록 하오. 짐이 직접 나가 손침을 죽이겠소. 그리고 이 일을 절대로 경의 어머니가 알지 못하게 하오. 경의 어머니는 바로 손침의 누이이니 만약 누설된다면 나의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될 것이오.

폐하! 조서를 써서 신에게 주소서. 거사할 때 신이 그 조서를 뭇사람에게 보여 주어야 손침의 수하들이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손량은 즉시 비밀 조서를 써서 진기에게 주었습니다. 드디어 손량의 계획대로 손침을 죽일 수 있을까요. 삼국연의를 숙독한 독자라면 아마도 ‘또 실패하겠군!’하고 생각하시며 읽으실 겁니다. 헌제도 조조에게 발각되었고, 조방도 사마사에게 발각되어 모두가 실패했으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전기가 부친에게 손량의 조서를 보여주자 부친이 아내에게 말하고, 아내가 손침에게 알려 손침을 죽이기는커녕, 손량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손량은 처남에게 신신당부하며 조서를 써주었건만 부자의 경거망동이 결국 일을 수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손침은 손권의 여섯째 아들인 손휴를 천자로 즉위시켰습니다. 손침은 대장군 겸 형주목이 되고, 집안의 다섯 형제는 모두 제후 자리에 올라 금군을 관장했는데, 그 권세가 천자인 손휴보다 높았습니다. 손휴는 손침을 우대했지만 속으로는 변고를 일으킬 것에 대비하여 대책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손침이 술과 쇠고기를 가지고 손휴의 장수(長壽)를 축원하려 했으나 손휴가 받지 않자 좌장군 장포에게 자신의 속내를 비쳤습니다.

내가 전에 회계왕을 내쫓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임금이 되라고 권했네. 그러나 나는 지금의 황제가 어질다고 여겨 세웠던 것인데, 이제는 내가 장수를 축원하려는 것마저 거절했네. 이것은 나를 홀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어떻게 하나 조만간 두고 보게.

장포가 은밀하게 손휴를 뵙고 사실대로 고하자 손휴는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며칠 후, 손침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모든 무기고에서 무기를 빼내어 밖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손휴는 크게 놀라 장포를 불러 대책을 협의했습니다. 장포가 정봉을 추천하자 손휴는 즉시 그를 은밀하게 불러 상의했습니다. 정봉이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이 납일(臘日)입니다. 뭇 신하를 크게 모은다는 구실로 손침에게도 연회에 꼭 참석하라고 부르소서. 신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정봉. 출처=예슝(葉雄) 화백

정봉. 출처=예슝(葉雄) 화백

정봉은 위막과 사삭, 장포와 협의하여 손침과 그 일당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바람이 미친 듯 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손침은 아침에 일어나려다 맥없이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집안사람이 입조를 말리자 손침이 호통치듯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가 금군을 장악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내 곁에 접근하겠느냐? 만약 집에 무슨 변란이 일어나면 불을 질러 신호하라.

손휴는 손침을 상석에 앉히고 술잔을 몇 번 돌렸습니다. 이어 정봉이 계획한 대로 장포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손침을 잡고, 정봉과 위막, 시삭은 손침의 형제들을 잡아 왔습니다. 손휴는 이들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아울러 삼족의 씨를 말렸습니다. 손침에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제갈각, 등윤, 여거, 왕돈 등의 집과 무덤을 다시 수축하고 유배된 자들을 사면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모종강은 손침이 손휴에게 죽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하늘이 악업을 갚을 때는 기이하게 갚기도 하고 바르게 갚기도 한다. 조비가 신하로서 임금을 폐하자 사마사 역시 신하로서 임금을 폐했다. 이것은 할아비가 한 대로 손자가 앙갚음을 받은 것이니 기이하게 갚은 것이고, 손침이 신하로서 임금을 폐하자 손휴는 임금으로서 신하를 죽였다. 이것은 자신이 한 대로 대갚음을 받은 것이니 바르게 갚은 것이다. 하늘은 기이하게 갚는 것으로 타이를 수 없으면 바르게 갚는 것으로 세상을 훈계한다.’

정봉의 계략에 걸려 참수당하는 손침. 출처=예슝(葉雄) 화백

정봉의 계략에 걸려 참수당하는 손침.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휴는 촉의 후주 유선에게 동오의 사실을 알렸습니다. 유선이 사자를 보내 축하하자 답례로 설후를 사자로 보냈습니다. 손휴는 설후가 돌아오자 촉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요즘 중상시 황호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많은 공경이 그에게 아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정으로 들어가니 바른말이 들리지 않았고, 들을 지나가니 백성들의 얼굴에 풀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른바 ‘소인배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둥지를 틀면 나라가 언제 불이 날지 모른다’는 속담 그대로였습니다.

만약 제갈량이 살아있다면 어찌 그렇게까지 되었겠소.

손휴는 다시 사자를 보내 사마소가 황제 자리를 찬탈하고 오와 촉을 침노할 것이니 각자 대비를 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강유는 다시 출사표를 올려 20만의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선봉은 요화와 장익이, 좌군은 왕함과 장빈이, 우군은 장서와 부침이, 후군은 호제가 맡았습니다. 강유는 하후패와 함께 중군이 되어 전군을 통솔했습니다. 강유는 하후패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산으로 진군했습니다.

한편, 등애는 촉군이 기산으로 출정할 것을 예측하고 촉군이 영채를 세울 만한 곳에 땅굴을 파고 대비했습니다. 그 예측이 맞자 촉군이 도착한 날 야습을 했습니다. 영채를 완성하지 못한 좌군이 패하자 강유는 협공하는 것을 알고 모든 군사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일 멋대로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 적병이 영채로 다가오거든 물어볼 것도 없이 주저하지 말고 활과 쇠뇌로 일제히 쏘아라!

위군은 날이 샐 때까지 10여 차례나 공격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등애는 한탄하며 군사를 물렸습니다. 다음날, 강유가 전서(戰書)를 보내 단둘이 겨루자고 했습니다. 등애도 이에 응했습니다. 둘은 서로가 제갈량의 팔진법을 놓고 겨루었습니다. 강유는 제갈량에게 직접 진법을 전수받아 365가지의 진법을 펼칠 수 있었지만, 등애는 고작 64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리하여 등애가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사마망이 구해주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등애는 빼앗긴 8개의 영채를 되찾기 위해 사마망과 계책을 세웠습니다.

내일 공은 진에서 그와 진법으로 겨루시고 나는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몰래 기산 뒤로 돌아가 기습하여 양쪽에서 혼전을 벌이면 빼앗긴 영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등애의 계책은 강유에게 간파되어 사마망은 물론 등애도 대패했습니다. 등애는 화살을 네 대나 맞으며 죽기로 도망쳤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대책을 협의해야만 했습니다. 사마망이 제안했습니다.

근자에 촉주 유선은 환관 황호를 총애하며 밤낮 주색으로 낙을 삼는다니 반간계를 써서 강유를 불러들이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

활과 쇠뇌로 등애군을 물리치는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활과 쇠뇌로 등애군을 물리치는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등애는 즉시 당균에게 황금과 명주(明珠) 등 보물을 주어 성도로 보냈습니다. 강유는 날마다 등애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등애는 굳게 지키기만 했습니다. 강유가 의아해할 때 조정으로 들어오라는 조서가 도착했습니다. 강유는 전투를 매듭지으려는데 들어오라는 조서를 받고는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서를 받았으니 군사를 철수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등애의 반간계가 성공하였으니 촉의 운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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