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객사한 '사랑꾼의 엽서'…이건희는 차곡차곡 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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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랑꾼’ 화가 이중섭의 제주살이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우리나라 박물관·미술관 역사상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 이야기입니다. 명품 컬렉션은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작가와 컬렉터가 시대와 만나, 혹은 시간을 거슬러 서로를 발견하는 운명적 순간에 세기의 컬렉션이 탄생합니다. 이번엔 이건희 컬렉션이 서귀포에도 12점 기증한 이중섭 작품 이야기입니다. 이중섭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공간입니다.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년 피란 생활 중에 그렸지만 이중섭이 살던 서귀포 집에서 바라본 섶섬과 제주 앞바다가 평온한 느낌을 준다. [사진 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년 피란 생활 중에 그렸지만 이중섭이 살던 서귀포 집에서 바라본 섶섬과 제주 앞바다가 평온한 느낌을 준다. [사진 이중섭미술관]

47억원. 201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팔린 이중섭(1916~56)의 그림 ‘소’의 가격이다. 그는 김환기에 이어 ‘한국에서 그림값 가장 비싼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행했던 예술가’로도 불린다. 가족과 떨어져 살며, 그림만 그리고 또 그리다가, 행려병자로 마흔 살 짧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개성 있는 스타일을 구축한 데다 이런 ‘스토리’까지 더해지며, 이중섭은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국민 화가’가 됐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만 황소·흰소 등 총 104점이 기증됐다. 유화·은지화·엽서화 등 이중섭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고루 포함돼 있다.

하지만 더 눈길이 가는 건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된 그림들이다. ‘배고팠지만 행복했던’ 이중섭의 제주 피란 11개월을 기려 만든 이 작은 미술관에도 이건희 컬렉션 12점이 갔다. 대부분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섶섬. [사진 이중섭미술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섶섬. [사진 이중섭미술관]

6·25 전쟁 때 월남한 이중섭 가족은 정부의 수용 피란민 소개(疏開) 정책으로 제주도에 왔다. 피란민이 넘쳐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였을텐데. 그림 속 제주 앞바다만큼은 거짓말처럼 평온하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는 당시 이중섭이 살던 서귀포 집에서 바라본 섶섬과 바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집 앞 초가집들과 눌(낟가리)들은 사라졌지만, 멀리 섶섬과 바다는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2021년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한 12점 중 하나다.

기증작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 시절 그린 ‘서귀포의 환상’ 이란 작품이 있다. 이중섭이 남긴 그림 중 가장 크다. 8명의 아이가 귤을 수확하고 있다. 파란 바다 너머 하늘도 귤색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함께 제주 생활의 고마웠던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귤이 자라는 따뜻한 곳에서 작은 집이나마 가족과 지낼 수 있게 된 안도감에서였을까. 이중섭은 개성을 줄인 차분한 붓질로 선물 받을 이에게 보답했다.

이중섭미술관은 기증으로 이뤄진 미술관이다. 서귀포시가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초가집을 복원한 게 1997년이다. 미술관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네 가족이 지낸 방이 너무 작고 초라해 놀란다. 시는 2002년 초가집 옆에 전시관을 세웠다. ‘이중섭 그림 없는 이중섭 전시관’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나섰다. 화상부터 지역 주민들까지, ‘이중섭 팬’들의 기증 덕에 제대로 된 미술관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이건희 컬렉션도 힘을 보탰다. 이중섭의 가장 행복했던 제주 시절과 관련된 12점을 엄선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이중섭미술관을 재건축해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중섭

이중섭

이건희 컬렉션을 통틀어 이중섭 연구자들의 가장 큰 주목을 끈 것은 그가 연애 시절 그린 엽서화다. 이중섭은 1939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한 해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처음 만났다. 1940~43년 이중섭이 글 없이 그림만으로 채워 마사코에게 보낸 구애의 엽서들. 미술사가 최열은 “‘사랑의 기호학’이라 부를 만한 엽서화 연작은 이중섭의 은지화 연작과 더불어 미술사의 축복”(『이중섭, 편지화』)이라고 평가했다.

이중섭의 엽서화가 처음 공개된 건 1979년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 회고전에서다. 여기 나온 엽서화·은지화·수채화 등 180여점을 삼성가에서 구입했고, 이 중 일부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됐다.

둘은 어렵게 결혼했지만 전쟁통 가족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이중섭은 11개월의 ‘행복한 제주 시절’ 후 얼마 못 가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혼 7년 만이었다. 일본의 마사코에게 “우리 네 가족의 장래를 위해 목돈을 마련키 위한 제작에 여념이 없소”라고 편지를 하던 이중섭은 1955년 미도파 화랑 전시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작품은 꽤 팔렸지만 수금이 안 됐다. 그 좌절이 이듬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랬기에 사후의 영광도, 치솟은 그림값도 더욱 안타깝다.

아내 마사코는 1976년에야 ‘남편의 나라’에 올 수 있었다. 이중섭 서거 2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978년 정부는 이중섭에게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마사코는 2022년 8월 13일 이중섭의 곁으로 돌아갔다. 101살. 7년을 부부로 함께 지내고 70년을 그리워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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