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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세계 혼란 이미 충분, 한반도가 전쟁·동란 보태선 안 돼”

중앙일보

입력

7일 중국 메이디야 호텔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왕이 부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7일 중국 메이디야 호텔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왕이 부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7일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우므로 한반도까지 전쟁이나 동란을 보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해법으론 “각 당사자 특히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잇딴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긴장의 원인은 미국과 한국으로 돌리고 북한을 감싸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날 왕이 부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계기로 열린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가 수년 동안 지연되어온 병의 근원은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고 평화 체제가 세워지지 않았으며, 안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미 나와 있는 처방은 중국이 제안한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 논의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의 동시 진행) 구상과 단계별 동시 행동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도 나왔다. 그는 “누구라도 한반도 문제를 빌려 냉전과 대결로 역주행한다면 역사의 책임을 져야 하며, 누구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려 한다면 막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급선무는 위협과 압박을 멈추고, 번갈아 고조되는 대결의 나선(螺線)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근본적 해법은 대화와 협상의 재개”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북한의 최근 도발에 대한 우려 표명 없이 미국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다”며 “한국이 중국의 해법을 무시하고 미국만 추종한다는 취지로 들리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2019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나 한·중, 중·일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신 올해 주변국 외교를 전망하면서 “중·일·한 협력을 깊이 있고 실질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히는 데 그쳤다.

90분간 ‘시진핑’ 21차례 언급

이날 1시간 반가량 진행된 기자회견 동안 왕 부장은 ‘시진핑’을 21차례 언급했다. 지난 5일 리창 총리가 정부업무보고에서 16차례, 지난해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9회, 앞선 2022년 기자회견에서의 11회와 비교해 늘어났다. 올해 양회가 시진핑 1인 체제를 재확립하는 무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대만 문제에 대한 날선 발언도 이어졌다. 왕 부장은 “최대 성의로 평화통일의 전망을 계속해서 쟁취할 것”이라면서도 “대만 섬 안에서 ‘대만 독립’을 상상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역사의 청산에 맞닥뜨릴 것이며, 국제적으로 누구든 ‘대만 독립’을 종용하거나 지지한다면 반드시 자기가 지른 불에 타 죽거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위협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존중, 평화공존, 호리공영”의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왕 부장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수법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일방적인 제재 리스트가 계속해서 연장되며, 보태려는 구실은 상상 이상”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지난해 친강 부장의 기자회견 만큼 날 선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친 부장은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면, 가드레일로도 궤도 이탈과 전복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국제협력’ 유엔총회 제출”

왕 부장은 중국이 글로벌 인공지능(AI) 거버넌스를 주도하겠다는 야심도 드러냈다. 그는 “중국은 ‘AI 능력을 강화하는 국제 협력 건설’에 관한 결의 초안을 적절한 때에 유엔 총회에 제출하겠다”며 “각국의 기술 공유를 촉진하고 지능의 격차를 메워 어떤 나라도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리창 총리가 정부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 플러스 이니셔티브’를 언급한 데 이어 왕이 부장까지 ‘AI 유엔 결의’를 언급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AI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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