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사찰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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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보안사 민간인 사찰파문은 10월 4일 서울기독교회관 인권위사무실에서 보안사 프락치로 활동해오던 탈영범 윤석양 이병(24·외대 노어과4년 제적)이 민간인 1천3백여 명에 대한 보안사의 정기사찰을 폭로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보안사의 정보사찰을 규탄하는 물결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었다.
10월 한달 동안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만 10여건이 넘었고, 특히 10월 13일 보라매공원에서 학생·재야인사·정치인 등 10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보안사 불법 사찰 규탄과 군정청산국민대회」가 개최돼 규탄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국민들의 이 같은 공분에 정부·여당도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로4일 만인 10월 8일 정부는 대 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이상훈 국방장관과 조남풍 보안사령관을 해임 조치했다. 군의 가장 말단인 이병이 최고지도부를 뒤엎은 셈이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보안사의 명칭을 변경하고 보안사에 대한 감사를 부활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유신정권이후「수고호텔」로 불리면서 정치인·학생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에 대한 사찰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는「서빙고분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빙고분실 건물은 11월말 철거됐고 부지는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
보안사준위가 지배인이고 사범이 웨이터로 있으면서 서울대생들을 사찰 해왔다는 서울대 앞 위장카페「모비딕」도 주인 강모여인(31)이 윤 이병 폭로직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기고 종적을 감춰 지금은 새 주인이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는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여당의 자기반성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규탄의 목소리는 허공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명칭변경·문책인사 등 극히 형식적 조치만 단행됐을 뿐 보안사에 대한 근본적 조직개편은 뒤따르지 않았다.
서빙고분실 폐쇄도 이미 이 건물이 너무 알러져 정보거점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됐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한편 윤 이병은 폭로 후 거의 세달 동안 간헐적으로 성명서 발표·기자회견을 해가며 재야단체들의 보호 속에 도피생활을 하고있다.
KNCC가 있는 기독교회관은 끊임없이 괴 차량에 감시당하고 있고 윤 이병의 가족들도 계속되는 협박전화와 미행 속에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야인사·야당 정치인 등은 윤 이병을 보호하고 민간인 사찰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법적 투쟁을 다짐하고 나섰다.
11월 1일 각계인사 5백여 명으로「윤석양 후원회」가 구성돼 윤 이병의 변론과 윤 이병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11월 10일에는 보안사 사찰대상자로 분류됐던 서울대 김진균 교수 등 3백33명이 윤 이병이 가지고 나온 사찰카드 등을 증거 보전 신청, 서울민사지법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번 폭로로 윤 이병은 지난 9일 KNCC인권위가 주는「90년 인권상」을 수상하는 등 인권의 표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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