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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후폭풍…교수들도 "내려놓겠다" '도미노 반발' 확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의과대학 증원에 대한 반대가 전공의에서 의대 교수로까지 거세게 확산하고 있다. 5일 정부가 전공의 면허 정지 처분에 돌입한 데 이어 이날 40곳 의대가 써낸 증원 규모가 정부 계획(2000명)을 훨씬 웃도는 3401명으로 확인되면서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전공의와 전임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지켜온 교수들마저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면서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5일 오전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삭발식을 열고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삭발식을 열고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강원대 의대 류세민 학장과 유윤종 의학과장 등 교수 10여명은 의대 증원 신청에 반발하는 삭발 투쟁을 벌였다. 강원대는 현재 49명인 의과대 정원을 140명까지 늘려달라는 신청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현재 정원 93명을 2배인 186명으로 늘릴 계획인 원광대 역시 의대 학장 등 교수 5명이 보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보직에서 사임한 한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수 의견을 대표해 본부에 입장을 전달했고 교육 환경과 처우 개선 등을 약속받은 뒤 일부 증원에 동의했다. 그런데 본부가 이를 초과해 신청했다”라며 “총장이 등록금 수입을 노리는 것밖에 안 보인다. 증원을 빌미로 수도권 대학 병원이 분원을 개원할 것이고 지역 불균형을 더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의 변을 올렸다. 그는 전공의와 전임의 등을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할 동료”라고 표현하면서 “이런 선생님들의 면허를 정지한다고 하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현재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의 총장 의견을 듣자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중증 고난도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라며 “동료들과 진료를 이어나갈 수 없다면 동료들과 다른 길을 찾겠다”라고 썼다.

동료인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체력적으로 지친 것보다 심리적인 게 문제”라며 “정부는 수가 인상 등의 대책은 없이 필수과 의사들이 사명감이 부족해 자리를 떠났다고 얘기하고 총장은 의과대학 구성원인 교수들 의견을 듣지 않고 (증원) 숫자를 써냈다.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배대환 교수처럼 사직을 고민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전하면서 “마지막 자존심까지 꺾인다면 있을 이유가 없다. 저도 (사직을) 고민한다”고 했다.

정부가 집단행동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착수한 5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 병실이 텅 비어있다. 뉴시스

정부가 집단행동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착수한 5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 병실이 텅 비어있다. 뉴시스

전국 30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 33명은 이날 “2000명 증원을 취소하라”며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피고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은 “대부분 의대 학장, 병원에서 10% 내외 증원 혹은 증원 불가 의견을 냈는데 총장이 (큰 증원 수요를) 직권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9일에 총회를 열고 개별 행동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교수들의 이탈이나 사직이 교수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대학 단위로 교수들은 전공의에게 제재가 가해지면 겸직 해제(진료 중단)나 사직 같은 행동으로 나서겠다고 경고해왔다. 실제 의견을 모으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 교수들이 모인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낸 성명서에서 “정부의 사법처리가 현실화한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비대위가 최근 수련병원 교수(9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605명 중 469명(77.5%)이 겸직 해제와 사직서 제출을 하겠다고 답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중 68%(293명)가 참여한 설문조사에서도 전공의들이 사법조치를 당할 경우 집단행동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85%에 달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경희대 의대 교수협의회, 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 등도 정부 사법처리가 현실화하면 방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바 있다.

한편 병원들은 사태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수술과 진료 축소에 이어 병동 통폐합까지 검토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줄어든 수술과 진료로 직원들에게 최장 한달 간의 무급휴직 신청까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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