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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핑도 콘서트…미스터 에브리띵이 싹 고친다, 엑스포 이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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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베일을 벗다 ①리야드 

사우디아라비아는 2019년 9월부터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하고 관광 목적의 입국을 허용했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나라인 만큼 편견도 많지만 사우디 구석구석 독특한 볼거리와 현지인의 환대를 경험할 수 있다. 수도 리야드 나즈드 빌리지 식당에서 식사 중인 사우디 남자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9년 9월부터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하고 관광 목적의 입국을 허용했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나라인 만큼 편견도 많지만 사우디 구석구석 독특한 볼거리와 현지인의 환대를 경험할 수 있다. 수도 리야드 나즈드 빌리지 식당에서 식사 중인 사우디 남자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는 요즘 국제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의 주요 경제협력 국가로, 2030년 엑스포 유치를 두고 경쟁을 펼친 국가로 이목을 끌고 있다. 그때마다 사우디는 희한한 나라로 그려진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왕가, 폐쇄적인 종교 관습, 그리고 여성 운전 허용 등 ‘이제야’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 지난달 초 사우디를 가보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비전 2030’을 발표하고 관광 분야에 집중 투자 중인 사우디는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넓은 땅 곳곳에 색다른 볼거리가 수두룩했고,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 온 낯선 여행자를 환대했다. 희한하고 이상하기보다는 신비로웠다.

2019년부터 관광 개방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의 깃발을 내걸고 경제뿐 아니라 국가 개조 수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보수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탓에 억압이 컸던 여성이 남자 보호자 없이 외출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의 깃발을 내걸고 경제뿐 아니라 국가 개조 수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보수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탓에 억압이 컸던 여성이 남자 보호자 없이 외출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는 우리에게 아픈 이름이다. 지난해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한국에 완패를 안겼기 때문이다. 당시 오일 머니에 무릎 꿇었다는 뉴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니까 리야드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이나 경쟁력보다는 돈의 힘으로 엑스포를 유치했다며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사우디 프로 축구팀이 호날두, 네이마르 같은 스타 선수를 막대한 몸값을 주고 데려갔듯이 말이다. 지난달 리야드에서는 엑스포와 관련한 뭔가를 보긴 어려웠다. 현재 국가 개조 수준의 변화에 박차를 가하는 사우디 입장에서 엑스포는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우디는 전제군주국가다. 호텔이나 관공서 건물에는 왕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왼쪽부터 국무총리 겸 왕세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를 창건한 압둘아지즈 국왕(1953년 사망), 현 국왕인 살만 국왕 순.

사우디는 전제군주국가다. 호텔이나 관공서 건물에는 왕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왼쪽부터 국무총리 겸 왕세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를 창건한 압둘아지즈 국왕(1953년 사망), 현 국왕인 살만 국왕 순.

이슬람 성지순례가 아닌 관광 목적으로 사우디 여행이 가능해진 건 불과 5년 전부터다. 2016년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경제를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로, 바로 관광이 핵심 분야다. 사우디의 주요 관광자원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2016년부터 본격화했고, 2019년 9월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관광지. 영토 면적은 한국의 약 21배에 달한다. 김경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관광지. 영토 면적은 한국의 약 21배에 달한다. 김경진 기자

이슬람 원리주의 탓에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주요 과제다. 남성 보호자 없이 여성 외출 허용, 여성 운전면허 취득 허용, 아바야(이슬람 여성이 입는 검은 망토) 착용 의무 폐지 같은 조처가 속속 진행됐다. 몇 해 전까지 상상할 수 없던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남녀가 함께 입장하는 영화관도 생겼다. 이 모든 걸 주도한 이는 ‘미스터 에브리띵’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국무총리다. 비전 2030을 설계하고, 종교경찰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것도 그였다.

커피와 낙타고기, 환대의 상징

리야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차량들. 롤스로이스를 비롯해 초대 국왕이 탔던 차를 전시해뒀다.

리야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차량들. 롤스로이스를 비롯해 초대 국왕이 탔던 차를 전시해뒀다.

수도 리야드는 사우디 왕조가 출발한 도시이자 인구 7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다. 하여 리야드에는 왕가의 정통성을 전시한 유적지와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테마파크가 공존한다. 먼저 가본 곳은 알 마스막 요새. 1902년 쿠웨이트에 망명해 있던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무함마드 빈 살만의 할아버지)이 병사 63명을 이끌고 이 요새를 탈환한 뒤 여러 부족과 토후국을 정복해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요새 인근에는 국립박물관도 있다. 국가 설립 과정부터 석유가 발견된 역사, 롤스로이스·캐딜락 등 국왕이 탔던 슈퍼카 전시가 흥미로웠다.

나즈드 빌리지 식당에서 맛본 음식. 가운데 밥 위에 닭고기와 양고기, 낙타고기를 얹었다.

나즈드 빌리지 식당에서 맛본 음식. 가운데 밥 위에 닭고기와 양고기, 낙타고기를 얹었다.

알 마스막 요새 옆에 있는 전통시장 ‘수크 알 잘’을 들렀다. 1901년 형성됐다는 시장에서는 마땅히 살 건 없었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아랍 전통복장부터 향신료와 골동품 등 온갖 잡동사니를 판다. 시장 입구를 지나는데 현지인이 대뜸 커피와 대추야자를 건넨다.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커피 맛은 희미하고 생강의 일종인 카르다몸 향이 진하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권에서 커피는 환대를 의미한다. 하여 커피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리야드 시내에 있는 전통식당 ‘나즈드 빌리지’에서는 낙타고기를 맛보기도 했다. 기름진 소고기 맛과 비슷했다. 낙타고기도 아랍에서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할 때 내는 음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이 지난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낙타고기를 먹었다.

15세기로 떠나는 시간여행

블러바드 시티는 휘황찬란하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분위기를 낸 쇼핑 거리.

블러바드 시티는 휘황찬란하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분위기를 낸 쇼핑 거리.

현대도시 리야드의 면모를 보고 싶다면 99층, 높이 302.3m에 이르는 킹덤센터 전망대를 오르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순식간에 최고층 스카이브릿지 전망대에 이른다. 남북으로 리야드 시내 전망이 훤히 보이는데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을 보니, 도시 전체가 2030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블러바드 시티’는 쇼핑 거리, 테마파크, 축제장이 모여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이 안에만 있으면 사우디가 아닌 서구 국가에 온 것 같다. 뉴욕 맨해튼을 본뜬 거리가 있는가 하면 지난해 블랙핑크가 공연을 열기도 했다. 저녁 시간, 식당에서는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물담배 피우는 여성을 많이 봤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디리야의 '아트 투라이프' 지구. 15세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디리야의 '아트 투라이프' 지구. 15세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디리야의 '아트 투라이프' 지구. 해 질 무렵 조명이 들어오면 신비한 분위기가 감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디리야의 '아트 투라이프' 지구. 해 질 무렵 조명이 들어오면 신비한 분위기가 감돈다.

리야드 외곽에 있는 ‘디리야’도 필수 방문 코스로 꼽는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사우드 왕조의 첫번째 수도였다. 15세기부터 사막 기후에 적응하며 발전시킨 건축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미로 같은 건물 사이를 산책하다가 5개 박물관도 구경할 수 있다. 해 질 무렵부터 시작해 야간조명이 들어오는 밤 시간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점토 벽돌의 색채가 무척 아름다웠다.

사우디 정부는 약 20조원을 투자해 유적지를 정비하고 주변으로 호텔, 리조트 단지까지 조성하는 프로젝트 ‘디리야 게이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윤 대통령 부부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사우디 정부는 한국 기업의 개발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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