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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쿠바에 뒤통수 맞은 북한의 '두 국가 자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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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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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의 수교 선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다. 한·중 수교보다 더 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당시 김일성이 받은 충격보다 이번에 한-쿠바의 전격 수교 소식을 접한 김정은의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수교 발표 이후 보름 이상이 지나도록 북한이 수교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상이 매우 큰 듯하다.

2018년 11월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난 김정은.[연합뉴스]

2018년 11월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난 김정은.[연합뉴스]

 사실 한국과 쿠바의 교류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4월 한인 1033명이 구인 광고를 보고 인천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갔다. 이들 중에 288명이 "설탕 산업이 호황이라 사탕수수 농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21년 3월 증기선을 타고 쿠바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가격이 폭락하면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겨우 연명했다.

경제난에도 북한 눈치 보던 쿠바
'두 국가' 선언 직후 한국 손 잡아
북한도 쿠바 용기·결단 배워야

 한인들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역만리 타향에서 차츰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쿠바에 1000명가량 살고 있다. 임천택(1903~1985) 전 쿠바한인회장은 한인 근로자들의 박봉에서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번 수교 이전에도 한국과 쿠바 정부의 교류는 꽤 오래전에 있었다. 1898년 스페인 지배에서 독립한 쿠바가 1949년 7월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지만, 그동안 공식 수교는 없었다. 6·25전쟁 기간에는 쿠바가 27만 달러를 지원했고, 1957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이 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1986년 4월 평양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와 김일성 북한 주석. [브라질 북한 선전매체 화면 캡쳐]

1986년 4월 평양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와 김일성 북한 주석. [브라질 북한 선전매체 화면 캡쳐]

 하지만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공산 혁명에 성공하면서 교류가 단절됐다. 특히 1960년 8월 쿠바가 북한과 수교하면서 쿠바는 중국·러시아에 이은 북한의 3대 해외 외교 전략 거점 역할을 해왔다. 북한은 '반미 사회주의'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면 미국에 맞서 싸운 '형제국' 쿠바에 10만정의 AK소총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이 총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키겠다"고 외쳤으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의 격랑에 휩쓸렸다.
 2005년 코트라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한-쿠바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였다. 한국 제품들이 쿠바로 흘러 들어갔고, K-팝 등 한류가 열정적인 쿠바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가 수교하고 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한국에도 수교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바나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바나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 땅을 밟았고, 2018년 5월에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면서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정부의 경제제재와 2021년 1월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관계가 급랭했다.
 그래도 한-쿠바 수교의 최대 장애물은 미국보다 북한이었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자 놀란 북한은 고위급 인사를 쿠바에 대거 파견해서 한-쿠바 수교 견제에 나섰다. 특히 윤병세 장관의 방문 이후 북한의 권력 실세 최룡해가 2016년부터 3년간 네 차례나 쿠바를 방문했을 정도로 북한이 위기감을 드러냈다.

2018년 8월 김정은의 특사로 아바나를 방문한 최룡해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는 모습.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2018년 8월 김정은의 특사로 아바나를 방문한 최룡해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는 모습.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줄곧 북한 눈치를 보던 쿠바 측이 지난달 7일 갑자기 "수교하자"며 한국 측에 연락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유엔에서 대사급 국교 수립을 전격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교 작업에 참여했던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쿠바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쿠바는 2021년 화폐 개혁에 실패하면서 물가 폭등으로 "먹고 살게 해달라"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로서는 북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수교 기회로 활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족과 통일을 부정한 김정은의 대남 전략 급변침이 자충수가 됐고, 쿠바가 한국과 손잡게 됐으니 뒤통수를 맞은 격이란 얘기다.

2016년 11월 28일 김정은이 주북한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모습. 김정은은 방명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 적었다. [연합뉴스]

2016년 11월 28일 김정은이 주북한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모습. 김정은은 방명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 적었다. [연합뉴스]

 당분간 북한은 한-쿠바 수교 쇼크의 돌파구 찾기에 골몰할 것이다. 갑자기 일본에 손을 내밀고, 코로나19 이후 독일·영국·스웨덴·스위스 외교관을 잇따라 초청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 북한 정권의 실패와 고립을 감추기 어렵다. 민생 경제를 우선하고 역사의 대세를 받아들인 쿠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배워야 북한도 살 길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