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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마다 야구부…그 뜻밖의 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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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20면

야구의 나라

야구의 나라

야구의 나라
이종성 지음
틈새책방

월드컵 땐 전 국민이 축구에 열광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일상을 점령한 스포츠는 야구다. 그것도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LG·롯데·한화 같은 개별 팀이다. 경북고·광주일고·경남고 등 지역 명문고는 한결같이 축구가 아닌 야구팀을 만들었다. 도대체 왜?

『야구의 나라』는 이런 미스터리를 풀어준다.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어떻게 야구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었나’라는 부제에 해답이 들어있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한국 야구의 원형질이 형성된 일제강점기 때의 이야기다. 고시엔(甲子園)은 일본 최고의 고교야구 대회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던 그때 그 시절 고시엔 지역 예선은 조선·만주·대만 등 식민지에서도 펼쳐졌다. 야구를 통해 식민지의 엘리트를 길들이려는 전략이었다.

1936년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혼합팀 인천상업이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 학무부장은 “히노마루(일장기) 아래에서 경쟁은 국민정신을 진흥한다”며 기뻐했다. 본선에 올라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으로 향한 어린 선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하다. 대구고보(현 경북고), 광주고보(현 광주일고) 등 일제가 만든 공립고보에서 일본인 교사가 야구팀 창설을 주도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명문고들은 1960~70년대 한국 고교야구의 전성기를 이끌고, 1982년 프로야구 창설의 밑거름이 됐다.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즐길 수 있는 축구와 달리 배트와 글러브가 필요한 야구는 태생적으로 ‘도련님의 귀족 스포츠’. 윤치영·박석윤 등 초창기 한국 야구의 기틀을 세운 사람 중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제일은행·한일은행·상업은행 등 금융팀으로 이어진 상업고 야구팀의 전통, 김성근·김영덕·신용균 등 1963년 한국의 아시아 야구 제패를 이끈 재일교포 4인방, 신일고·충암고 등 고교야구 신흥 명문의 등장 등 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흥미로운 이야기와 ‘군산상고의 김성한’과 ‘경남고의 최동원’ 등 반가운 이름이 쉴 새 없이 이어져 책이 술술 넘어간다.

스포츠는 사회의 축소판. 한국 야구를 ‘엘리트의 동맹’으로 규정한 저자는 한미일의 동맹을 강력한 ‘야구 동맹’으로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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