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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암세포, 왜 치료 어렵죠?…퓰리처상 받은 의사의 답 [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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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의 노래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세포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기본 단위이며 생리, 병리 현상을 주관한다는 것쯤은 웬만한 초등학생도 다 아는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과학적 사실이 입증된 것은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퓰리처상 수상자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종양내과 전문의인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지은 『세포의 노래』는 인류와 세포의 관계를 샅샅이 파헤친 역작이다. 세포의 발견부터 그 구조, 기본적 기능과 최신 세포요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들을 망라한 ‘세포 백과사전’이다. 일반적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분야인 과학·의학을 다루는 서적이지만 지은이의 멋들어진 글솜씨와 다양한 실제 의료 경험 소개, 명쾌한 설명 덕분에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이었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의 초상화. 그는 1670년대 처음으로 단안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진 까치]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이었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의 초상화. 그는 1670년대 처음으로 단안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진 까치]

세포는 DNA 보관소인 세포핵과 세포막, 세포질, RNA,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염색질, 골지체, 리보솜, 퍼옥시좀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된다.

여러 가지 세포 중에서도 암세포의 탄생과 재탄생이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암세포의 많은 부분들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암의 완전 정복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지은이는 암의 특징은 세포 분열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했다. 종양 유전자인 가속기와 종양 억제인자인 제동장치가 돌연변이로 고장 나 있기 때문에 암이 발병한다는 것이다.

암 치료가 어려운 것은 ‘이기적인’ 암세포들이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고 잡다한 돌연변이 세포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으로부터의 해방은 세포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그 특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 그는 세포가 모든 생물의 기본 단위이고, 인간의 질병을 이해할 열쇠가 세포의 기능 이상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1840~1850년대 의학과 생리학에 혁신을 일으켰다. [사진 까치]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 그는 세포가 모든 생물의 기본 단위이고, 인간의 질병을 이해할 열쇠가 세포의 기능 이상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1840~1850년대 의학과 생리학에 혁신을 일으켰다. [사진 까치]

줄기세포는 가장 각광받고 있는 세포이다. 1990년대 초에 어빙 와이스먼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사람의 조혈(造血)줄기세포를 찾아냈다. 이 세포는 하나만으로도 성숙한 적혈구와 백혈구 수십억 개를 생산할 수 있다. 동물의 한 기관계 전체도 만들 수 있다. 골수에서 찾아낸 혈액줄기세포는 백혈병 치료 등에 이용되고 있다. 골수 이식은 주요 세포요법 중 하나이며 성공률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사람의 배아줄기(ES)세포를 이용한 연구에 대해서는 생명윤리 논란이 거세다. 그래서 ES세포 연구는 극히 제한되고 있다. 야마나카 신야는 성체의 비줄기세포인 섬유아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생물학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해낸 것이다. 2007년 야마나카는 이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의 피부 섬유아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세포로 전환했다.

다음 해에 제임스 톰슨은 야마나카가 활용한 네 개의 유전자 가운데 c-Myc와 Klf4를 다른 두 유전자로 대체해서 마찬가지로 섬유아세포를 배아 줄기세포로 바꾸었다. 이렇게 만든 세포에는 유도만능줄기(iPS)세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iPS세포로부터 연골, 신경, T세포, 췌장 베타세포 등 원하는 모든 세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그 세포들은 모두 자신의 세포이기 때문에 이식해도 조직 적합성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면역 억제도 필요 없다. iPS세포로 모든 퇴화한 기관이나 조직을 재생할 수 있다.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80년대에 세균 세포("병균")가 감염과 부패의 원인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사진 까치]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80년대에 세균 세포("병균")가 감염과 부패의 원인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사진 까치]

칼슘 덩어리처럼 보이는 뼈는 연골세포, 뼈를 만들고 뼈를 쌓는 뼈모세포, 뼈의 바탕질을 먹어 치우는 뼈파괴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뼈파괴세포를 파괴하면 뼈는 두꺼워지며 겉으로는 튼튼해 보이지만 ‘수선’이 어려워지며 조혈줄기세포가 살고 있는 골수가 들어차 있어야 할 뼛속 공간이 비좁아지면서 뼈석화증이라는 병이 생긴다. 뼈모세포와 뼈파괴세포 사이의 이런 역동적 균형은 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관절염은 연골이 퇴화해서 생기는 병이다. 뼈 사이에 끊임없이 마찰이 일어나면서 윤활 작용을 하는 연골막이 닳아서 사라지기 때문에 관절염이 생긴다는 것이 기존의 견해였다.

그런데 지은이는 2021년 논문을 통해 관절염이 연골세포의 퇴화 때문이 아니라 연골 전구세포의 죽음으로 뼈와 연골이 충분히 생성되지 못하면서 관절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서 발생하는 불균형에서 온다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성인에게서 관절의 연골은 수선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손상될 때 수선하는 세포 자체가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생 항상성의 결함에서 오는 퇴행 질환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 파스퇴르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그도 파스퇴르와 마찬가지로 '세균론'을 내놓으며 질병의 '원인' 개념을 정립해 의학에 과학적 엄밀함을 부여했다. [사진 까치]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 파스퇴르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그도 파스퇴르와 마찬가지로 '세균론'을 내놓으며 질병의 '원인' 개념을 정립해 의학에 과학적 엄밀함을 부여했다. [사진 까치]

부상이나 노화를 소멸 속도와 수선 속도 사이의 격렬한 전투라는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손상의 속도가 회복이나 재생의 속도를 압도한다면 결국 균형이 깨진다는 논리다. 이 격렬한 전투의 주인공 또한 세포이다. 이 책은 이 밖에도 체외수정 같은 ‘의학보조’생식, 유전자 편집, 선천면역계세포들, 항체를 가진 B세포, 암세포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T세포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건강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 모든 생명현상의 출발점인 세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건강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세포요법 등 의료 고유 분야는 전문가들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도 세포에 관한 상식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세포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쓴 이 책은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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