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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대선자금 스캔들은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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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0년 대선 때 10만달러를 썼다. 1백년 뒤 존 F 케네디는 그 1백배인 9백80만달러를 쓰고 대통령이 됐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선 때 1억9천3백만달러를 모금해 1억8천6백만달러를 썼다고 선관위에 보고했다.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의 모델 영국도 1881년까지는 선거라면 으레 혼탁한 돈선거였다. 후보들은 지역구의 선술집을 선점해 유권자들을 대접했다. 유권자들의 병든 가축과 고물이 다 된 선박을 비싸게 사주기도 했다. 1881년 바로 앞 선거의 극에 달한 타락에 충격받은 의회는 3년에 걸쳐 돈을 주는 후보와 받는 유권자를 엄벌하는 쪽으로 선거법을 고쳤다. 판사들은 액수가 많고 적고를 가리지 않고 돈을 준 후보의 당선무효, 돈 받은 유권자의 유죄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자금은 세월이 흐를수록 눈사람 뺨치게 불어나고, 거기에 따라 선거자금을 끌어모으는 방법도 지능적으로 발달했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SK한테서 1백억원을 받는 장면은 007 영화 같다. 그러나 정치인과 정당이 쓰는 정치비용 전체에 비하면 직접 선거자금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당들 간의 대선자금 공방은 뭐 묻은 개들의 싸움판 그대로다. 최돈웅 의원의 1백억원은 그 액수와 전달방법이 우선 충격적이고,최도술씨가 받은 10몇억원은 그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데 국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盧대통령과 3당 대표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지만 뒤로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인상이다.

엄정한 수사로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그러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멍청할 만큼 지극히 당연하다. 전모는 왜 밝히는가. 불법자금을 받은 사람과 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다. 처벌은 왜 하는가. 재발 방지와 정치판의 정화를 위해서다. 관련자 처벌로 정치자금의 수수가 투명해지는가. 아니다. 그건 충분한 조건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없는가. 있다. 경제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만큼 악질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면 한국의 정치인들도 충격이 잊혀지기 전에 1880년대 영국 국회를 거울 삼아 독한 마음 크게 먹고 정치와 선거자금에 관한 법을 혁명적으로 고쳐야 한다. 대홍수는 침수피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홍수는 동시에 썩은 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시궁창 같은 강과 내(川)를 깨끗이 쓸어내는 서비스도 한다.

미국이 최초로 정치헌금에 관한 펜들튼법이라는 것을 만든 것은 1867년이다. 그 뒤 열번 이상 정치자금 법을 고치고 강화해 1970년대까지 와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맞았다. 72년 닉슨 재선운동본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끌어모으고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한 사건이다.

미국 의회는 1880년대의 영국 의회처럼 정치자금의 한도를 명확히 하고, 무엇보다 정치헌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정치자금 관련 법을 고쳐나갔다. 그 중의 하나가 74년 정치활동위원회(PAC)를 합법화한 '연방선거운동법'이다. 그것은 기업과 노조가 개인들로부터 정치헌금을 모아 지지하는 후보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미국의 선거비용은 영국의 다섯배 정도다. 기업과 노조와 이익단체와 이념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든 PAC의 난립으로 정당의 기능이 위협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치르는 불가피한 대가다.

정당들이 예상되는 상처를 줄이려고 격렬한 공방을 벌이는 것은 할 수 없다. 판단은 법과 국민이 한다. 그러나 사건을 건설적으로 활용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정치헌금을 투명하게 하고 선거를 포함한 정치비용을 파격적으로 줄이는 목표가 담긴 로드맵을 만들면서 싸우라는 것이다. 스캔들은 기회다. 盧대통령과 정치권이 이 스캔들로 상징되는 썩은 정치풍토를 정략적으로 이용만 하고 망각 속에 묻어버리면 심각한 반(反)정치의 저항을 부를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