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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모교'도 신입생 7명뿐…'100년 추억' 지우는 저출산 [사라지는 100년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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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학생이 줄어든 임동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는 학생 수 만큼 책상이 세개 놓여져 있다. 김종호 기자

학생이 줄어든 임동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는 학생 수 만큼 책상이 세개 놓여져 있다. 김종호 기자

‘아버지가 다니셨고, 고모가 다니셨고, 나도 다녀 졸업한 첫 학교. 영원하고, 무궁하라.’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저자 유안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21년 모교(경북 안동 임동초)의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쓴 ‘헌시’의 일부다. 지난 8일 방문한 임동초 교정엔 이 시가 새겨진 대리석이 100주년 기념비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러나, ‘영원하라’던 시인의 꿈은 사라질 위기다.

임동초는 전교생이 15명뿐인 ‘폐교 위기’ 학교다. 5학년 교실엔 학생 수에 맞춰 책상이 세 개만 놓여 있었다. 한 명은 짝꿍이 없다. 박재석 임동초 교장은 “아이들이 없으니 100년이 넘는 학교라도 문을 닫을 위기라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임동초까지 사라지면 임동면에는 아예 학교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100년 초교 10곳 중 4곳 사라질 위기 

학생이 줄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북 안동시 임동초등학교. 김종호 기자

학생이 줄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북 안동시 임동초등학교. 김종호 기자

저출생 태풍이 100년 역사의 초등학교도 쓰러뜨리고 있다. 중앙일보가 학교정보공시 사이트인 학교알리미를 분석한 결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는 전국에 780곳이 있었고, 이 중 301개교(38.6%)가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폐교 위기 학교였다. 100년 학교 10곳 중 4곳이 학생 수 감소로 인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시·도교육청은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육성 권고’에 따라 전교생 60명 이하인 학교를 통폐합 기준(지역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음)으로 본다.

신입생이 0명인 ‘100년 학교’도 적지 않았다. 녹색정의당 이은주·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157개 초등학교 중 24개교(15.3%)가 100년 학교였다.

80년대 초교 7개, 중학교 1개였는데…이제 한 곳 남아

8일 오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임동초등학교에서 박재석 교장이 1965년도 졸업앨범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8일 오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임동초등학교에서 박재석 교장이 1965년도 졸업앨범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임동초도 올해 신입생이 0명인 100년 학교다. 지난해에도 신입생이 없었다가 다행히 한 명이 전학을 왔다. “안동 인재의 반은 임동에 있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 교육에 깊은 전통과 자부심을 가진 곳이었지만, 저출생과 지역 소멸로 인한 인구 절벽의 쓰나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지역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물론, 학령인구가 사실상 소멸했다. 안동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1987년 임동면의 인구는 8768명이었다. 당시 임동면에만 초등학교 7개, 중학교 1개가 있었다. 1987년 임동초를 졸업해 현재 모교 교사로 재직 중인 권오수씨는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마다 애들이 가득했고, 임동초 졸업생이 200명은 넘었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올해 임동면 인구는 1650명이고 학교는 임동초 하나만 남았다. 임동중은 학생 수 감소로 2018년 폐교됐다. 1992년 임하댐 건설로 주요 거주지가 수몰된 탓도 있지만, 도시로 빠져나가는 젊은 사람을 잡을 수 없었다. 지난해 임동면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 명이고, 만 5세 미만 아이 수는 13명이다. 황순형 임동면 부면장은 “어린아이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며 “학생 수가 없어서 100년이 넘은 학교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의 인구 유입은 아예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동네의 생기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정후 모교’ 128주년 광주 서석초도 올해 입학생 7명뿐

도심에 있는 100년 학교들도 무너지고 있다. 저출생에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올해로 개교 128주년을 맞은 광주 서석초는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한 이정후 선수와 지난해 LG트윈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염경엽 감독의 모교다. ‘야구 명문’이었지만, 이제는 야구부를 유지하는 것조차 걱정해야 할 처지다.

1930년 창단한 서석초 야구부는 이정후 선수가 입단한 2007년엔 전교생이 400명을 넘었지만, 지난해 130명으로 줄었다. 올해 입학생 수는 7명뿐이다. 지난해 입학생도 13명으로 광주시 초등학교 평균 입학생 수(81명)의 16%에 불과하다. 광주교육청 학생배치계획에 따르면 2028학년도에 전교생이 60명으로 감소해 ‘폐교 위기’ 학교로 분류될 전망이다.

유성호 서석초 교감은 “주변에 아파트가 없어 인근에 거주하는 학생 자체가 없는 도심 속 소규모 학교”라고 했다. 학교 반경 500m 이내에 아파트 단지가 없고, 길 건너편에 조선대가 위치해 학교 인근 건물에는 상점과 원룸뿐이라는 설명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서울의 100년 학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재동초·매동초·교동초·효제초 등은 100년 이상 된 초등학교지만, 올해 입학생은 24~35명이다. 서울 평균 입학생 수(98명, 2023년 기준)는 물론, 종로구 평균 입학생 수(5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나치게 도심에 있기 때문에 상주인구가 없어서 ‘소규모 특성화 학교’로 차별화 전략을 꾀하고는 있지만, 역사와 전통만으로는 학생을 모으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10년 뒤 100년 학교 중 절반이 폐교 위기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100년 학교의 위기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10년 뒤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 수는 1416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현재 추세로는 이 중 절반(48.7%) 가까이가 폐교 위기에 놓일 것으로 분석됐다.

저출생에 따른 학생 수 감소를 고려하면 폐교 위기의 100년 학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재석 임동초 교장은 “무언가가 100년 이상 유지됐다는 것은 지금까지 존재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존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규모가 된 100년 학교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교육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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