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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한의원도 몰래 들어섰다, 흉가로 방치된 100년 학교 [사라지는 100년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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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녹슨 정문 사이로 광시초의 전경이 보인다.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녹슨 정문 사이로 광시초의 전경이 보인다.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 정문에는 ‘재난위험시설(D급) 지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지난 14일 오전에 찾아간 학교 건물은 페인트칠은 오래전 벗겨진 듯 노출된 콘크리트 외벽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철제 난간과 기둥은 녹슬고 건물 앞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였다.

흉가처럼 변해버린 학교를 둘러보던 중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가보니 쭈그려 앉은 노부부가 있었다. 깨진 유리창 파편이 널브러진 공터에서 이들은 떨어진 은행알을 줍고 있었다. 예산읍에서 왔다는 80대 노부부는 “아무도 오지 않아 은행을 쓸어담기 딱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학교 건물 뒤로 80대 노부부가 은행알을 줍고 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학교 건물 뒤로 80대 노부부가 은행알을 줍고 있다. 이가람 기자

은행알도 방치된 100년 학교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광시초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개교한 역사 깊은 학교다. 지금까지 문을 열었다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1999년에 문을 닫았고 폐교된 지 25년이 지났다.

지역의 상징이었던 이 학교는 폐교 이후 골칫거리로 변했다. 이렇다 할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로 개교 100년을 맞이한 현재까지 건물과 부지는 미활용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2004년까지는 학교 건물에서 ‘무면허 한의원’이 불법 운영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광시초 46회 졸업생인 김기원(63)씨가 보여준 1974년 2월 10일 당시 졸업식 사진. ‘우리 학급’이라는 글씨와 함께 같은 반 57명의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찍혔다. 김기원씨 제공

광시초 46회 졸업생인 김기원(63)씨가 보여준 1974년 2월 10일 당시 졸업식 사진. ‘우리 학급’이라는 글씨와 함께 같은 반 57명의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찍혔다. 김기원씨 제공

한때는 광시면에서 유일한 학교였기에 넘쳐나는 학생이 골칫거리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40년대에 광시초를 다닌 이영예(89)씨는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눌 정도였는데 그래도 한 반에 학생이 60~70명이나 됐다”고 했다. 결국 1934년과 1949년에 학교 두 곳(장신초·웅산초)이 더 들어섰다. 광시초 46회 졸업생인 김기원(63)씨가 보여준 1974년 졸업식 사진에는 ‘우리 학급’이라는 글씨와 함께 57명의 아이 얼굴이 빼곡했다.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광시면의 인구는 1만882명이었다. 신대리 마을 부이장 정택수(70)씨는 “학교 정문 앞으로 ‘하꼬방(판잣집)’이 줄지어 있어 아침부터 왁자지껄했다”며 “날씨가 따뜻할 때는 해가 떨어지면 다들 밀짚으로 만든 방석 하나씩 가지고 나와 학교 운동장에 깔아 놓고 수다도 떨고 잠도 자고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이젠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올해 1월 기준 광시면 인구는 2942명. 44년의 세월 속에 인구가 70% 넘게 줄었고 광시초와 장신초가 문을 닫았다. 유일하게 남은 웅산초는 현재 전교생 42명으로 폐교 위기에 놓였다. 광시초가 폐허가 되는 사이 학교가 있는 신대리는 인구 소멸의 길을 걸었다. 이 마을에서 출생아의 울음소리는 2004년 2월 4일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끊겼다.

폐교 10곳 중 1곳 ‘미활용’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지역의 상징이자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학교 중 상당수가 동네의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폐교는 활용 현황에 따라 ▶자체활용 ▶대부 ▶매각 ▶미활용으로 구분되는데, 지난해 3월까지 누적 3922개의 폐교 중 ‘미활용’이 358개(9.1%)였다.

활용 현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매각’(2587개·66%)의 경우도 사후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1994년에 폐교된 경북 안동의 임동초 사월분교장은 ‘전통문화체험수련관’ 용도로 매각됐지만, 현장에 가보니 운동장은 고추나 콩 등이 심겨 있는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폐교는 곧 마을 소멸. 공동체 위한 활용 방안 찾아야”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녹슨 정문 사이로 광시초의 전경이 보인다.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지난 14일 충남 예산 광시면에 위치한 광시초등학교의 모습. 녹슨 정문 사이로 광시초의 전경이 보인다. 1999년에 폐교한 광시초는 현재 미활용 상태로 방치 중이다. 이가람 기자

100년 역사를 지닌 학교조차 폐교되고 방치되는 현상은 지역 공동체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김정겸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단순히 교육시설이 사라진다는 것을 넘어서서 운동회 등 마을 공동체를 유지했던 여러 역할도 함께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학생이 없어 학교가 사라지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연대감을 유지하고 마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이 가능하도록 폐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장난감 미술관의 내부 모습. 1907년 개교해 100년 역사를 지닌 요츠야 제4초등학교가 2007년에 폐교하자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장난감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쿄 장난감 미술관 홈페이지

도쿄 장난감 미술관의 내부 모습. 1907년 개교해 100년 역사를 지닌 요츠야 제4초등학교가 2007년에 폐교하자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장난감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쿄 장난감 미술관 홈페이지

한국보다 먼저 저출생·고령화의 문제를 겪으며 폐교가 속출한 일본에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학교의 오랜 역사와 마을 속 학교의 역할을 함께 이어가는 것이다.

‘도쿄 장난감 미술관’은 100년 역사를 지닌 폐교를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되살린 사례로 손꼽힌다. 신주쿠 도심에 위치했던 요츠야 제4초등학교는 1907년에 개교해 100주년이 되던 2007년에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 유서 깊은 학교 건물을 보존하고 싶었던 주민들은 협의회를 구성해 폐교 활용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2년 넘는 고민 끝에 주민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장난감 미술관을 세우기로 했다. 12개의 빈 교실을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필요한 9억 원의 비용을 기부금 등으로 모았다. 주민들은 장난감 학예사로 활동하는 등 미술관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선 도쿄 장난감 미술관이 지역을 활성화하는 명물이자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농어촌 폐교는 주변 자연환경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지자체와 주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로 단지 학교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오고 싶어하는 마을의 특색과 분위기를 갖추는 등 폐교와 마을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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