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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료계·정부, ‘강 대 강’ 대결 멈추고 현실적 대안 모색하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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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장을 떠난 전공의 72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장을 떠난 전공의 72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빅5’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 현실화

정치 논리 배제하고 ‘단계별 증원’ 등 테이블에

우려했던 ‘의료대란’이 현실이 됐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대한 의료계의 집단 반발이 본격화하면서다.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인 ‘빅5’ 전공의들은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어제 오전부터 일제히 근무를 중단했다. 지방 주요 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심각한 진료 차질을 빚었다. 각 병원에선 수술 취소가 속출하고 응급실 기능까지 위축되면서 한시가 급한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에 의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다수는 복귀를 거부했다. 의료계와 정부가 시종 강 대 강으로 부딪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로 인한 의료 공백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다.

이제라도 의료계와 정부는 열린 자세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의료계 대표와 정부 관계자의 TV 토론에서도 양쪽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각자 할 말만 하고 갈라서는 건 국민이 바라는 해결 방식이 아니다. 의료계와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증원의 큰 방향은 맞다 하더라도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양쪽 모두 유연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의 의대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의과대학 학장협의회에선 350명을 제시했었다. 의료계 전체가 의대 정원 확대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란 뜻이다. 다만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 없이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 압박하고 나선 것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황이다.

정부도 한꺼번에 2000명을 증원한다는 기존 입장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갑자기 2000명 늘리면 당장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료계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니 일단 내년엔 500~1000명 안팎을 증원하고, 몇 년 뒤 추이를 보아가며 다시 추가 증원 여부를 논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각자 한발씩 물러나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접점을 찾는다면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통해 단계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가는 세부적 설계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 정치권 역시 총선 유불리 등 정치적 이해만 좇는 접근 대신 사회적 중재에 나서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책임감이 절실하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정부·의료계 간의 대화 중재에 적극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