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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1일 만에 파국으로 막 내린 신당의 ‘묻지마 통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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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개혁신당 이준석 공동대표(왼쪽)와 이낙연 공동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각각 합당 철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개혁신당 이준석 공동대표(왼쪽)와 이낙연 공동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각각 합당 철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최소한의 정체성 합의도 없었던 개혁신당

새 정치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큰 상처 남겨

중도·무당파 표심을 끌어안겠다고 출범한 개혁신당이 고작 11일 만에 파국을 맞이했다. 지난 9일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 금태섭 대표의 ‘새로운선택’, 이원욱·조응천 의원의 ‘원칙과상식’이 깜짝 합당 선언을 했을 때부터 참여 세력들의 정치적 뿌리가 워낙 달라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는데, 결국 걱정은 현실이 돼버렸다.

이낙연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어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신당 통합 좌절로 크나큰 실망을 드렸다”며 이준석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낙연 대표는 이준석 대표 측을 겨냥해 “합의가 부서지고 민주주의 정신이 훼손되면서 통합의 유지도 위협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개혁신당의 양 축이었던 이준석 대표와 이낙연 대표가 정면 충돌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지난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준석 대표가 총선 선거운동 및 정책 결정 권한을 자신에게 위임하는 안건을 주도적으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낙연 대표 측은 회의장을 중도 퇴장한 뒤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전두환이 국보위를 만들어 다 위임해 달라며 국회를 해산한 것과 뭐가 다르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대표의 합당 철회 선언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관리할 수 있다고 과신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일이 많다”고 머리를 숙였다. 근본적으로는 공천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가 두 대표 갈등의 핵심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돌이켜 보면 이준석·이낙연 대표가 손잡은 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 창당에 나선 영향이 크다. 비례대표 의석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제3지대 정파들이 ‘우리도 뭉쳐야 산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전격 합당을 추진한 것이다. 노선의 차이가 드러나도 선거 때까지는 봉합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체성 합의도 없이 이뤄진 ‘묻지마 통합’은 한국 정치사에 보기 드문 초고속 블랙 코미디로 끝나버렸다.

이준석·이낙연 대표는 거대 정당의 대표 출신이지만 아무런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담판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외곽에서 기싸움만 벌이다 판을 깨버렸다.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무한 정쟁에 지친 유권자들의 유력한 대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개혁신당이 연출한 막장 드라마는 새 정치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준석·이낙연 대표도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꼼수는 정수를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정당은 뜻과 이념의 정체성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