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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진료유지명령…불응 땐 의료법상 면허정지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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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 19일 오전 서울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접수창구 대기실이 시민들로 꽉 차 있다. 이찬규 기자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 19일 오전 서울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접수창구 대기실이 시민들로 꽉 차 있다. 이찬규 기자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19일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가 집단으로 사직서를 냈다. 전국 병원 곳곳에서 수천 명이 줄사표를 내며 수술과 치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진료 차질이 빚어졌다. 정부는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집행부 2명에겐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빅5 병원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빅5 전공의들이 20일 오전 6시 이후로 근무를 중단한다고 예고했으나,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612명 중 600여 명이 이날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났다. 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박단 대전협 회장도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사직서를 제출했다. 현장을 무시한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꿈을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며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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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빅5인 삼성서울병원은 160여 명, 서울성모병원은 190여 명이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상당수가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병원은 20일 전공의 4년 차를 제외한 전체 전공의가 진료 현장을 떠나기로 하면서 성인 70%, 소아 60%씩 수술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방 대형병원에서도 사직이 잇따랐다. 부산대병원 전공의 100여 명은 이날 오전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출근하지 않을 예정이며, 동아대병원 전공의 10여 명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광주 전남대병원은 224명, 조선대병원 10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강원대(64명),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97명), 강릉아산병원(19명) 등 강원 지역 전공의들의 사직도 이어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빅5에서 시작돼 전국에서 수천 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전국 전공의는 1만3000여 명이다.

비대면 진료 제한없이 허용 방침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방문해 비상진료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방문해 비상진료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뉴스1]

진료 공백이 빚어지자 정부는 전국 수련병원 221개 전공의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말 그대로 ‘현재 하고 있는 진료를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각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및 필수의료 유지 명령’을,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에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두 명령 모두 의료법 59조1항에 근거한 것으로, 불응할 경우 1년 이내 면허정지 처분이 가능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의협 지도부 2명에게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행정처분에 돌입한다는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며 “당사자들 의견을 들은 뒤 명령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면허정지 처분이 내려진다”고 전했다. 의협에 따르면 사전통지를 받은 사람은 비상대책위원회 김택우 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이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빅5’ 전공의

서울 상급종합병원 ‘빅5’ 전공의

복지부는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송지침을 적용하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진료시간을 확대할 예정이다. 12개 국군병원 응급실을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시에는 보건소 진료를 연장하기로 했다. 비대면 진료도 제한 없이 허용할 방침이다. 파업으로 인해 중증·응급치료 거부 등 피해를 본 환자에게 법률 서비스 상담을 제공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국번 없이 ‘129번’으로 전화)도 운영한다.

의료계는 정부 방침에 반발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대국민 호소문’에서 “의사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를 하고 있다”며 “의사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망가뜨릴 것이 자명한 잘못된 정책을 막아야만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장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2000명 증원 계획 철회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계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는 것과 관련해 이날 “지난 정부처럼 지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참모진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취지로 발언했다. 또 의료계 일각에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회자하는 데 대해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재명 “정부, 혼란 극대화 뒤 타협쇼 노려”

반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침을 ‘권력 사유화’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향후 의·정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서 봉합할 것’이란 내용의 지라시를 거론하며, “항간에 혼란과 반발을 극대화해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은 뒤 누군가가 나타나 규모를 축소하면서 원만하게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 쇼’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나리오가 떠돈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과거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 자체에 대해선 줄곧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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