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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5) 사마의, 조조와 유비를 능가하는 후흑(厚黑)의 대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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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서는 소설 속 사마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최대 경쟁자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제갈량의 지혜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제갈량이 한 수 위인 셈이지요. 이는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도 계속됩니다.

삼국지연의는 제갈량을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했습니다.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지략에 매번 쓴맛을 보는 자가 두 명 있습니다. 소설 초반에는 주유였고, 후반에는 사마의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경쟁자인 주유와 사마의는 조금 다르게 묘사됩니다. 초반의 주유는 제갈량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며 피를 토하고 죽고 말지만, 사마의는 농락당하더라도 제갈량의 북벌을 차단합니다.

제갈량의 호적수인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의 호적수인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의가 소설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조가 한중을 공격하여 장로를 무찔렀을 때입니다. 사마의는 조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유비는 속임수와 힘으로 유장의 것을 빼앗았기 때문에 아직 촉땅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한중을 얻으셨으니 익주는 동요하고 있을 것입니다. 속히 진격하면 반드시 무너질 상황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기를 잘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기회를 잃으시면 안 됩니다.

사마의의 말이 옳습니다. 만약 조금 늦춰 주었다가 치국에 밝은 제갈량이 승상이 되고, 삼군 중에 뛰어난 관우, 장비 등이 장수가 되어 촉의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관애(關隘)를 지킨다면 범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약 조조가 사마의의 말을 듣고 익주를 공격했다면 소설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또한 그렇지 않았기에 지금의 소설이 나올 수 있었겠지요. 사마의가 제갈량의 적수가 되지 못하게 그려졌음에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천문과 병법에 뛰어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이는 사마의에서부터 시작된 사마씨가 위나라로부터 정권을 찬탈해 진(晉)나라를 세운 것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전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적수가 되지 못해도 제갈량에 버금가는 고수로 만듦으로써 상대적으로 제갈량을 더욱 부각하는 방법이지요, 소설에서 이러한 장면을 찾는다면 바로 제갈량의 공성계를 들 수 있습니다.

제갈량의 공성계에 물러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의 공성계에 물러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이 1차 북벌을 하며 기산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마속에게 중요한 요충지인 가정을 지키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속이 엉뚱한 전략으로 가정을 잃자 제갈량은 형세의 위태로움을 깨닫고 즉각 철수 명령을 내립니다. 제갈량이 철수작전을 지시하며 후퇴하려 할 때, 사마의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제갈량이 있는 서성현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제갈량에게는 2500명의 병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병사들을 주민으로 변장시켜 태연한 모습으로 거리를 청소하게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복병을 숨겨놓은 것으로 의심하고 군대를 황급히 퇴각시켰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 사마소가 의아해했습니다.

제갈량이 군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작태를 부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님께서는 어째서 바로 군사를 물리십니까?

소설 속에서 제갈량은 언제나 신중하게 전략을 세우는 인물입니다. 반면 사마의는 의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공성계는 제갈량이 사마의의 이런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사마의가 군사를 물리자 제갈량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 사마의라면 분명히 즉시 물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마의도 제갈량 못지않은 대단한 지략가입니다. 맹달의 반란을 기습공격하고, 제갈량이 여인 옷을 보내며 조롱해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조상 일파가 천하를 주무를 때도 곧 죽을 것 같은 연기로 그들을 안심시킨 후, 불시에 그들을 제거했습니다. 사마의의 인내와 지략이 제갈량보다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마의가 즉시 물러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에서의 공성계 장면은 고수와 고수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제갈량은 적은 병력으로 사마의의 15만 명의 정예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천하의 제갈량이 도망가다 잡혀 죽는 것은 치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갈량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목숨을 건 승부수를 던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수답게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마의에게 이렇게 암묵적인 신호를 보냈습니다.

‘사마의! 지금 날 죽일 수는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너도 토사구팽(兎死狗烹) 될 것이니 잘 생각해서 처신해라.’

고수가 보낸 신호는 고수만이 알 수 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학창의를 입고 향불을 피우고 거문고를 타는 것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신호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마의는 아직 내부의 적들이 많았습니다. 제갈량을 제거하면 촉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예와 조씨 일가에게 홍복(洪福)일 뿐, 사마의에게는 최대의 악수(惡手)가 되는 것입니다. 적국에 최대의 경쟁자가 있어야만 위나라 조정에서도 사마의를 무시하지 못할 터이니까요.

죽은 공명에게 혼쭐이 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죽은 공명에게 혼쭐이 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의가 대군을 후퇴시킨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또 다른 소설적 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사마의는 언제나 제갈량보다 한 수 아래인데 이런 식으로 묘사하면 제갈량의 지혜가 일천해지니까요.

사마의가 위나라 조정에서 권력을 확실하게 장악한 때라면 제갈량의 승부수인 공성계도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제갈량의 함정이라고 해도 사마의의 지략과 15만 정예병이라면 작은 성 하나를 함락시키는 것은 큰 피해 없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성계는 때를 알고 이용하는 법과 물러서는 인내심을 가르쳐 주는 최고수들의 멋진 한 판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위나라를 섬겨 태부 벼슬을 제수받았으니 신하로서는 더 오를 곳이 없는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딴마음을 품고 있지 않나 의심했기 때문에 나는 늘 두려운 마음을 품고 조심했다. 내가 죽은 후 너희 두 사람은 국경을 잘 다스리되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임종을 앞둔 사마의가 두 아들을 불러놓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나관중본에는 조금 다르게 묘사된 부분이 있습니다.

너희는 주인을 잘 섬기면서 내 깨끗한 이름을 저버리지 않도록 다른 뜻을 품지 마라. 거스르는 자는 크게 불효하는 것이다.

나관중은 사마의를 제갈량 못지않게 훌륭한 지략가로 묘사했지만 모종강은 이러한 내용을 싹둑 잘라버리고 오직 제갈량 띄우기에만 심혈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제갈량은 초려에서 유비를 따라나설 때부터 오장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오직 위나라를 무찌르는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데 생전에 제갈량과 최대의 호적수였던 사마의가 위나라를 멸망시키는 시동을 걸었습니다. 죽은 제갈량이 이를 알았다면 사마의의 꿈에 나타나 무어라고 하였을까요. 관우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소설의 한 토막을 완성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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