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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4) 조상, 가족의 안위만 구하다가 삼족이 박살 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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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은 환범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마의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환범은 통곡하며 뛰쳐나갔습니다. 주부 양종이 인수를 잡고 울며 다시 간청했습니다.

주공! 오늘 병권을 놓으면 스스로 결박하고 가서 항복해도 동시(東市)에서 목이 떨어지는 꼴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태부는 반드시 나에게 약속을 지킬 것이다.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의는 조상이 병권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즉시 조상의 형제 세 사람은 우선 사저로 돌아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감옥으로 송치하여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달했습니다.

사마의는 먼저 환관 장당을 하옥하고 신문했습니다. 그러자 공모자로 조상의 신임을 받은 5명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환범은 ‘사마의가 모반을 했다’는 무고죄로 잡아들였습니다. 모든 자백을 받아낸 사마의는 조상의 삼형제를 포함하여 이들 일당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수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삼족을 멸하고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에 넣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문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일체의 죄를 묻지 않겠으니 관직에 복귀하라는 방을 붙였습니다. 이로써 조정은 안정되었습니다. 모종강은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하늘은 위나라를 너무 미워하시는구나! 어디서 주워온 줄도 모르는 조방에게 제위를 잇게 하더니 또다시 취한 듯 꿈속에서 사는 조상에게 돕게 하는구나.  

설령 사마의가 앓다가 진짜로 죽었다고 해도 그 나라는 역시 촉이나 오에 합병되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조상이 환범의 말을 받아들여 천자를 허도(許都)로 옮기고 격문을 띄워 각 지방에 있는 군사를 부러 모은다고 해도 그의 힘으로는 이기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끝내 사마씨에게 먹히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사마의 삼부자가 갑자기 성문을 닫아걸자 제 가족만 그리워하는 멍청이는 낯 두껍게 용서를 바라며 스스로 오랏줄을 묶었으니 더할 말이 있겠는가? 조조의 간사한 영웅적 기질이 두 대를 겨우 이어 오고, 자손이 이렇게 부진했으니 슬픈 일이로다!’

조방은 사마의를 승상으로 삼고 구석(九錫)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가 사양하며 받지 않자 조방은 허락하지 않고 부자 세 사람이 함께 국사(國事)를 돌보게 했습니다.
이제 사마씨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 일가는 멸족시켰지만 옹주 등지에 있는 친척인 하후패 등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낙양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하후패는 크게 놀라 즉시 부하 3천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곽회가 이를 제압하러 달려왔습니다. 하후패는 군사의 반을 잃자 마침내 한중으로 와서 촉에 투항했습니다. 강유가 주연을 베풀어 환영하며 하후패에게 사마의 부자의 움직임을 물었습니다.

종회. 출처=예슝(葉雄) 화백

종회. 출처=예슝(葉雄) 화백

늙은 놈이 이제 막 반역을 도모했으니 밖으로 눈 돌릴 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나라에는 신진 두 사람이 한창나이에 있는데 만약 병마를 거느리게 된다면 실로 오와 촉에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종회와 등애가 이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어린애들쯤 입에 올릴 가치나 있겠소이까?

강유가 후주에게 투항한 하후패와 함께 위나라를 공격하고자 청했습니다. 상서령 비의가 반대했지만 강유의 의지는 투철했습니다. 결국 후주의 칙령을 받아내고 위를 공격하러 나섰습니다.

강유의 전략은 먼저 강병(羌兵)과 동맹을 맺어 함께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맹은 이뤄지지 못했고 위군과의 전투에서는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제갈량이 죽기 전에 제작한 연노(連弩) 덕분에 양평관으로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강유는 몇만 명의 군사를 잃은 채 패잔병을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왔고, 사마의의 아들 사마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낙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두산에서 위나라의 진태와 싸우는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우두산에서 위나라의 진태와 싸우는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251년 8월. 천하를 호령하던 사마의가 병이 나더니 점점 깊어졌습니다. 두 아들을 침상 앞으로 불러 분부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위나라를 섬겨 태부 벼슬을 제수받았으니 신하로서는 더 오를 곳이 없는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딴마음을 품고 있지 않나 의심했기 때문에 나는 늘 두려운 마음을 품고 조심했다. 내가 죽은 후 너희 두 사람은 국경을 잘 다스리되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조방은 사마의를 후하게 장사 지내고 사마사를 대장군(大將軍)에 임명하여 기밀대사(機密大事)를 모두 책임지고 처결하게 했습니다. 둘째 아들 사마소는 표기상장군(驃騎上將軍)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사마씨의 나라 만들기가 서서히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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