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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3) 조상을 감쪽같이 속인 사마의, 일거에 국권을 장악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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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이 황제에 오르고 사마의와 조상이 정사를 도왔습니다. 조상은 사마의를 매우 공손히 섬겼으며 모든 일을 반드시 먼저 알리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조상의 문하에는 식객이 5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실속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일을 좋아하는 다섯 사람이 있었으니, 하안, 등양, 이승, 정밀, 필궤가 그들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꾀주머니로 부르는 대사농(大司農) 환범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조상에게 든든한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하안이 조상에게 말했습니다.

주공! 대권을 타성바지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후환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사마공과 내가 함께 선제께 아드님을 잘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어찌 차마 배반하겠는가?

지난날 조공의 부친께서는 사마의와 함께 촉군과 싸울 때 이 사람에게 여러 번 수모를 당하셨고, 그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째서 살피지 않으십니까?

조상은 하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러 관리와 상의하고 조방에게 아뢰어 태부(太傅)로 승진시켰습니다. 그러자 병권은 모두 조상의 손안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조상은 아우 조희를 중령군(中嶺軍)으로, 조훈을 무위장군(武衛將軍)으로, 조언을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삼아 각기 어림군(御林軍) 3천 명을 이끌고 자유롭게 대궐을 출입하게 했습니다. 하안과 등양, 정밀을 상서(商書)로 등용하였고, 필궤를 사예교위(司隸校尉), 이승을 하남윤(河南尹)으로 삼았습니다. 조상은 이들과 밤낮으로 어울려 일을 협의했고, 조상의 집에는 빈객들이 날마다 넘쳐나 대궐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사마의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도 관직을 내놓고 한가하게 지냈습니다. 조상은 다섯 막료와 매일 주색을 즐겼으며, 각처에서 천자에게 진상하는 물건들도 좋은 것은 먼저 챙겼습니다. 환관 장당은 온갖 아첨으로 조상을 모시면서 궁녀들과 장인들을 빼돌려 조상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어느 날, 하안은 관로가 점술이 밝다는 소문을 듣고 등양과 함께 그를 청해서 주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주역점을 잘 치는 관로.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역점을 잘 치는 관로. 출처=예슝(葉雄) 화백

자네는 주역을 잘 안다고 하면서 주역 속의 풀이는 어째서 한마디도 안 하는가?

주역을 잘 아는 사람은 주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삼공(三公)에 오를 수 있을지 시험 삼아 점을 한번 쳐주지 않겠는가? 내가 연달아 파리 수십 마리가 콧등에 모여 앉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코는 산입니다. 산은 높아도 위태롭지 않아야 오래도록 높은 관직을 지킬 수 있는 것인데, 지금 파리가 나쁜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으니 지위가 높은 사람은 엎어질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군후께서는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태시고 도리가 아닌 일은 하지 마셔야 삼공에 이를 수도 있고 파리도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늙은이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늙은이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다볼 줄 알고, 상투적인 말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관로가 돌아가자 두 사람은 관로가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관로는 두 사람을 죽은 송장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닥칠 운명이었습니다. 한편, 조상은 참모들과 함께 사냥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우 조희가 간청했습니다.

형님께서는 막중한 권한을 맡고 계십니다. 밖으로 나가 사냥만 좋아하시다가 만약 어느 사람에게 암수라도 당한다면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병권이 내 손안에 있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환범이 재차 간청하자 조상은 사마의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이승을 형주자사(荊州刺史)에 제수하고 하직 인사를 하면서 동태를 살펴보도록 했습니다. 사마의는 이승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조상의 생각을 간파하고 병세가 깊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한동안 태부를 뵙지 못했습니다만, 병세가 이렇게 깊으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천자께서 저를 형주 자사로 명하시어 특별히 하직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병주(幷州)는 북쪽에 가까우니 방비를 잘해야 할 것일세.

형주 자사입니다. 병주가 아닙니다.

자네가 방금 병주에서 왔다고?

태부께서는 귀가 어두워지셨습니다.

이제 나는 늙고 병까지 위독하여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을지 모르는 형편이네. 두 자식이 불초하니 자네가 잘 지도해 주기 바라네. 만약 대장군을 뵙거든 두 자식을 돌봐 주시기를 천 번 만 번 바란다고 전해주시게.

이승은 사마의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조상은 이승의 말을 듣고는 앓던 이가 빠진 듯이 기뻤습니다. 사마의는 이승이 돌아가자 즉시 두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감쪽같은 연기로 조상일파를 속이는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감쪽같은 연기로 조상일파를 속이는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승이 이번에 가서 소식을 전하면 조상은 반드시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성을 나가 사냥을 할 때만 기다리면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조상은 조방을 모시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이 성 밖으로 나가자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즉시 지난날 적을 무찌르던 부하들과 수십 명의 가장(家將) 및 두 아들을 이끌고 말에 올라 곧장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고 궁중으로 들어가 곽태후에게 아뢰었습니다.

조상은 선제께서 탁고(託孤)하신 은혜를 저버리고 간악하게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그 죄는 파면해야 마땅합니다.

천자가 밖에 계시니 어찌하겠소?

신은 천자께 표주하여 간신들을 죽일 계책이 서 있으니 태후께서는 걱정 마소서.

사마의는 성문을 닫아걸고 조방에게 표를 올려 조상 일가를 파면시킬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사이에 환범이 성문을 빠져나가 조상에게로 갔습니다. 사마의는 꾀주머니 환범이 간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습니다. 조상이 환범의 말을 듣고 허창으로 가서 천자를 모시고 대항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제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우둔한 말은 외양간의 콩만 그리워하니 틀림없이 쓰지 못할 것입니다.

사마의는 조상과 형제들의 병권만 빼앗으려는 것뿐 맹세컨대 다른 뜻은 없다는 의지를 전하게 했습니다. 조상이 당황하여 결정을 못 하고 있을 때 환범이 말을 몰고 달려왔습니다.

태부가 이미 변란을 일으켰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째서 천자께 허도(許都)로 가시기를 청하여 밖에 있는 군사를 출동시켜 토벌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전 가족이 모두 성안에 있소! 다른 곳으로 가서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소?

하찮은 사내도 어려움에 빠지면 살려고 합니다. 지금 주공께서는 천자를 수행하며 천하를 호령하고 계시는데 누가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스스로 죽을 곳으로 가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은 너무 재촉하지 말고 내가 찬찬히 생각 좀 해보게 기다리시오.

태부께서는 낙수(洛水)를 가리키며 맹세하셨습니다. 결코 다른 뜻이 없으시다고요. 장군께서는 병권을 내놓으시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소서.

일이 급합니다. 다른 말은 듣지 마소서. 죽을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조상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칼을 빼어 들고 한숨을 지으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먼동이 틀 때까지 눈물만 흘렸을 뿐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환범이 다시 재촉하자 조상은 칼을 내던지며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나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네. 진실로 관직을 버리기를 원하네. 부잣집 늙은이로 살면 족하지 않겠는가?

조진은 지혜와 계략이 남다르다고 스스로 자랑해 왔는데, 이제 보니 그의 아들 삼 형제는 참으로 돼지 새끼, 소 새끼뿐이구나!

환범의 진언도 무시하고 사마의에게 병권을 내어주는 조상. 출처=예슝(葉雄) 화백

환범의 진언도 무시하고 사마의에게 병권을 내어주는 조상. 출처=예슝(葉雄) 화백

환범은 울면서 막사를 나와 통곡했습니다. 조상의 그릇이 이러하매 이런 자를 주공으로 모신 환범인들 오죽이나 서러웠겠습니까. 이제 그도 죽으러 갈 수밖에 없었으니 울음과 통곡은 바로 그 자신을 위한 마지막 깨우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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