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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16) 제갈각, 총명함에 교만이 더하여 일찍 목숨을 잃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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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서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 씨 일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손권은 처음에 서부인이 낳은 아들인 손등을 태자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손등이 병으로 죽자, 왕부인이 낳은 둘째 아들인 손화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손화는 전공주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손화가 태자에 오르자 전공주는 부친인 손권에게 매번 손화를 헐뜯는 말을 했습니다. 손권의 관심이 반부인에게로 향하면서 전공주의 손화 헐뜯기는 성공했습니다. 손권이 손화를 태자 자리에서 내쫓고 반부인이 낳은 아들인 손량을 태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손화는 울분을 참다가 한을 품고 죽었습니다. 이때의 오나라는 육손과 제갈근 등 뛰어난 참모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대신 어릴 때부터 총명함으로 이름을 떨친 제갈각이 오나라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했습니다.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71세의 손권도 시름시름 앓아눕더니 위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손권은 태부 제갈각과 대사마 여대를 불러 뒷일을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갈각은 즉시 손량을 황제로 세우고 천하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습니다. 위나라의 염탐꾼이 이러한 사실을 낙양에 보고했습니다. 사마사는 즉각 군사를 동원하여 오나라를 치려고 협의했습니다. 상서(尙書) 부하가 말렸지만 사마사가 직접 출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마사는 기회가 왔을 때는 꼭 이용해야 한다며 지금이 그때라고 강변하고 오나라를 세 방향에서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정남대장군 왕창, 정동장군 호준, 진남장군 관구검이 각각 10만 명의 군사를 통솔하였고, 사마소가 삼군을 총지휘하였습니다. 사마소가 세 장군을 불러 말했습니다.

동오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동흥이다. 지금 그들은 이곳에 큰 제방을 쌓고 좌우에 또 두 개의 성을 쌓은 다음, 소호 뒤편에서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여러분은 각별히 조심하라.

한편, 제갈각도 위군이 세 방향으로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상의를 했습니다. 관군장군 정봉이 말했습니다.

동흥은 우리의 중요한 곳이오. 만일 잃기라도 한다면 남군과 무창이 위태로울 것이오.

내 생각도 같소. 공은 3천 명의 수군을 이끌고 강을 따라가시오. 내 뒤이어 여거, 당자, 유찬에게 각각 1만 명의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삼로로 나누어 나가 맞아 싸우도록 하겠소. 그리고 연주포 소리가 들리거든 일제히 진격하시오. 나도 직접 대군을 이끌고 뒤따라가겠소.

눈 속에서 위 군을 무찌르는 정봉. 출처=예슝(葉雄) 화백

눈 속에서 위 군을 무찌르는 정봉.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나라의 호준은 부교를 가설하고 강을 건너 제방 위에 군사를 둔치고 오나라의 두 성을 공략했습니다. 오군은 나오지 않고 죽기로 성을 사수했습니다. 이때 정봉의 3천 군사가 도착하여 얕보고 방비를 하지 않은 위나라의 병사들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사마소는 동흥에서 패하자 군사를 철수시켰습니다. 제갈각은 이긴 기세를 몰아 사마소를 추격하여 위나라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촉에게 편지를 보내 북쪽에서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20만 대군을 일으켜 남쪽을 치기로 했습니다.

대군이 막 출발하려고 할 때입니다. 갑자기 땅에서 한 줄기 흰 기체가 피어올라 대군을 뒤덮었습니다. 장연이 제갈각에게 말했습니다.

이 기체는 흰 무지개입니다. 군사를 잃을 조짐을 예시하는 것이오니 태부께서는 조정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위를 치면 안 됩니다.

네 어찌 감히 불길한 말을 하여 우리 군사의 사기를 꺾어 놓느냐?

장연은 여러 사람이 용서를 빌어 목숨을 구하는 대신 파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고 말았습니다. 제갈각은 정봉의 의견을 따라 합비의 신성을 공격했습니다. 사마사는 주부 우송의 의견을 따라 굳게 지키기만 하게 했습니다. 사마소에게는 곽회를 도와 촉의 강유를 막게 했습니다.

제갈각은 몇 달을 합비신성을 공격했지만 함락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분발하자 성의 동북쪽이 무너지려고 하였습니다. 신성을 지키는 장특이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즉시 말 잘하는 사람에게 책적(冊籍)을 갖고 오군의 영채로 가서 제갈각에게 바치고 울며 고하도록 했습니다.

위나라 법에는 적에게 성이 포위되는 경우 성을 지키는 장수가 백 일을 굳게 지켰는데도 구원병이 오지 않으면 성을 지키던 장수가 성을 나가 적에게 항복해도 가족들이 연좌되어 벌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성을 에워싸고 계신 지가 90여 일이 지났으니 며칠간만 더 기다려 주소서. 제가 군사와 백성들을 모두 거느리고 성을 나가 투항하겠습니다. 오늘 우선 책적을 가져다 바칩니다.

제갈각은 장특이 지연책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장특은 그 사이에 성을 말끔히 보수하고 제갈각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화가 머리까지 치민 제갈각이 군사를 재촉하여 성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성 위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와 제갈각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습니다. 여러 장수가 구원해 영채로 돌아왔지만 상처가 심했습니다. 결국 군사들도 병이 나자 철수하던 중 관구검이 들이쳐 대패하고 쫓겨 왔습니다.

제갈각은 부끄러워 병을 핑계 대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손량과 문무관료가 문병을 왔습니다. 제갈각은 남들의 비판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 오히려 관원들의 잘못을 찾아내어 가벼운 잘못은 변방으로 쫓아냈고,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목을 베었습니다. 급기야는 손권이 손준에게 맡긴 어림군의 통솔권을 자신의 심복인 장약과 주은으로 교체했습니다.

손준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제갈각과 사이가 나쁜 태상경 등윤이 이 기회를 이용해 손준에게 말했습니다.

제갈각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멋대로 잔학하게 굴며 공경들까지 살해하니 머잖아 임금의 자리까지 넘보려 들 것이오. 공은 종실의 한 사람으로 어찌 일찌감치 도모하지 않소?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소. 지금 당장 천자께 아뢰어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야겠소.

짐도 그 사람을 보는 것마저 두려워 늘 제거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이제 경들에게 과연 충의가 있다면 은밀히 도모하도록 하오.

폐하! 연석을 베풀고 제갈각을 부르소서. 몰래 무사들을 벽의(薛衣) 속에 숨겨 두었다가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연석에서 죽여 버리면 후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갈각.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각. 출처=예슝(葉雄) 화백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갈각에게는 여러 가지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문지기 병사들이 본 적이 없는 상주(喪主)가 들어오지를 않나, 벼락이 치며 대들보가 무너져 내리지를 않나, 세숫물에서 피비린내가 나지를 않나 해괴한 일이 연이어 나타났습니다.

연회 초청을 받고 수레를 타려고 할 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옷자락을 물었고, 집을 나서자 땅 위에서 흰 기체가 피어올랐습니다. 제갈각은 괴이하여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손준과 등윤을 만나 다시 천자를 뵈러 입궐하였습니다. 결국, 손준과 등윤의 계획대로 제갈각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내와 전 가족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제갈근이 살아있을 적에 총명하기만 하고 감정을 그대로 돌출하는 제갈각을 보고는 한숨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 자식은 가족을 보호할 만한 주인이 아니다.

위의 광록대부 장집도 사마사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갈각은 오래잖아 죽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위세가 주인을 떨게 할 정도이니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모종강도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되풀이되는 것이니 역사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 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사마의가 조상을 죽인 것은 다른 성받이가 종실을 없앤 것이고, 손준이 제갈각을 죽인 것은 종실이 다른 성받이를 없앤 것이다. 제갈각과 조상은 재주 있고 어리석은 것이 달랐지만 교만하기만 하고 대책에 허술했던 것은 두 사람이 똑같았다. 밖으로는 자신을 떠나는 인심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안으로는 손준의 계책을 예측하지 못한 채 또다시 자긍심만 앞세워 고집을 부리며 남의 말을 듣지 않더니 과연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총명함이 비록 아버지 제갈근보다 나았다고 하지만 끝내 재주만 믿다가 화를 불렀으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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