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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오면 6500㎞ 먼곳 보낸다…'망명 외주화' 불 붙은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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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튀니지와 이탈리아 사이 해상에서 유럽으로 탈출하려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이 소형 보트에 가득 타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제이주기구는 올해 들어서만 지중해에서 약 10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사망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해엔 지중해에서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8월 튀니지와 이탈리아 사이 해상에서 유럽으로 탈출하려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이 소형 보트에 가득 타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제이주기구는 올해 들어서만 지중해에서 약 10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사망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해엔 지중해에서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AFP=연합뉴스

자국으로 이주하려는 난민을 제 3국으로 보내는 ‘망명의 외주화’가 이탈리아·영국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불법 이민의 유입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인권 침해 위험이 높다”는 반대론이 맞붙는 가운데 덴마크·오스트리아·독일에서도 유사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탈리아 “난민 심사는 알바니아서” 

망명의 외주화에 가장 근접한 나라는 이탈리아다. 지난해 11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가 이탈리아 선박이 지중해에서 구조한 이민자의 망명 신청을 검토하는 동안 알바니아의 구금 시설로 보내는 협정을 맺었고, 이 협정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의회의 마지막 관문이던 상원을 통과했다. 하원은 지난달 비준안을 가결했다.

이 협정은 지난달 29일 알바니아 헌법재판소 문턱도 넘었다. 협정에 대해 알바니아 야당이 “수용 시설의 법적 관할권을 타국에 양도하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는데,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남은 절차는 알바니아 의회의 협정 비준뿐이다. 에디 라마 총리가 속한 사회당이 의석 과반 이상을 차지해 통과가 유력하다.

협정이 비준되면 이탈리아는 바다에서 구조한 이주민(미성년자·임신부 제외)을 80㎞ 떨어진 알바니아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서 연간 3만6000명의 망명 신청을 처리할 것으로 기대한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대책이 시급했던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 가입 지지를 바라는 알바니아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9월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이주자 구조선 갑판 위에서 이주민들이 잠을 자고 있다. 이들은 지중해 중부 리비아 연안 국제 수역에서 목선에 타고 있다가 이탈리아로 향하는 이 구조선에 구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이주자 구조선 갑판 위에서 이주민들이 잠을 자고 있다. 이들은 지중해 중부 리비아 연안 국제 수역에서 목선에 타고 있다가 이탈리아로 향하는 이 구조선에 구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은 6500㎞ 먼 르완다 활용

영국도 도버해협 등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를 6500㎞ 떨어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22년 이 같은 계획을 밝히고 르완다에 1억4000만 파운드(약 2272억원)의 지원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이 “르완다로 보내진 난민 신청자들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것이란 믿을 만한 근거가 있고, 국제인권법에도 어긋난다”고 판결해 무산 위기에 처했다. 영국 정부안은 망명 심사 후 난민 자격을 얻더라도 르완다에 살거나 영국이 아닌 제 3국에 다시 망명을 신청하도록 하고 있어, 알바니아에서 망명 승인을 받으면 이탈리아로 갈 수 있는 이탈리아 방식보다 인권 침해 논란이 큰 편이다. 1951년 제네바 협약은 ‘난민이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되거나 송환돼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르완다가 난민 신청자들을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는 국가로 보낼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새 협약을 체결했다. 르완다를 안전한 국가로 규정해 인권법 조항을 피해갈 수 있게 한 ‘르완다 안전 법안’도 지난달 하원을 통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CNN은 “유엔은 여전히 (르완다 계획이) 국제 난민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며 “총선은 다가오는데 르완다 계획은 점점 시간과 돈 낭비로 보인다. (영국 총리인) 수낵이 왜 이민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삼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달 15일 영국 에식스주 리온시에 있는 보트야드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그는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보내려는 계획에 대해 일부 정당의 반발에 직면한 상태였다. AP=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달 15일 영국 에식스주 리온시에 있는 보트야드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그는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보내려는 계획에 대해 일부 정당의 반발에 직면한 상태였다. AP=연합뉴스

덴마크·독일·오스트리아도 추진

다른 유럽 국가도 유사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덴마크는 2021년 망명 신청자를 외국에 보낼 수 있게 법을 개정했다. 이어 2022년 르완다와 관련 계약도 맺었다. 지난해 11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이주민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재검토를 권고했으나, 덴마크 이민 및 통합부 장관인 카레 디바드 벡은 로이터 통신에 “망명 절차를 파트너 국가로 이전하는 건 여전히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독일에서도 보수 성향 제 1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이 지난해 11월 “난민 심사 기간 동안 망명 신청자들을 ‘안전한 제 3국’으로 보내자”는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제 3국으로 가나·르완다, 몰도바·조지아도 거론했다. 오스트리아도 망명 신청자를 제3국으로 추방하되 망명 신청이 승인되면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이들 국가들은 EU 차원의 대책도 촉구해왔다. EU는 지난해 12월 20일 ‘신(新)이민·난민 협약’을 맺었다. 국경 구금 센터 설립, 신청이 거부된 망명 신청자에 대한 신속한 추방 조항이 포함됐고, 유럽에 유입되는 난민을 회원국이 분담해 받자는 내용도 담았다. 일부 망명 신청자는 다른 EU 국가로 재배치하고,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는 수용국에 재정적인 기여를 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의 한 망명 신청자 등록 센터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그 뒤로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의 한 망명 신청자 등록 센터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그 뒤로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권 침해, 국내 정치 악용 우려

유럽 국가들이 망명의 외주화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난민 증가로 인한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경우 해안에 상륙한 난민이 15만7000여 명에 이르렀다. 2022년엔 10만5000명이었다.

망명 신청자들의 증가는 재정 부담도 초래한다. 영국은 현재 약 9만8000명의 난민 신청자가 난민 지위 부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수용하는 비용이 하루 800만 파운드(약 134억원)에 달한다. 제임스 클레버리 내무부 장관은 2일 의회에 “망명 신청자를 호텔에 수용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26억 파운드(약 4조36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현재의 망명 제도에 연간 약 40억 파운드(6조7000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극우 성향 정당이 세력을 키우고 있는 유럽 각국의 정치 지형도 배경이다. 망명의 외주화를 추진하는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는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프랑스 등에서도 반이민 정서에 기대 극우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독일에선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극우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고 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치인들이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는 계획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지난달 나오자 독일 전역에선 AfD를 반대하는 시위에 1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지난달 18일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의원들이 독일 연방의회(하원)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 토론회는 이 정당 간부들이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극단주의 지도자와의 회동에서 이민자 대량 추방을 논의한 것과 관련해 열렸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의원들이 독일 연방의회(하원)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 토론회는 이 정당 간부들이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극단주의 지도자와의 회동에서 이민자 대량 추방을 논의한 것과 관련해 열렸다. AFP=연합뉴스

유럽 각국에서 커지는 반이민 정서, 망명의 외주화 정책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와 알바니아의 협상이 발표되자 유럽평의회 인권 담당 집행위원인 던야 미야토비치는 “망명 책임의 외부화는 난민, 망명 신청자, 이주민이 인권 침해에 노출될 위험을 크게 높인다”고 강조했다.

미야토비치는 “일부 국가가 국경을 넘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며, 이는 유럽과 전 세계의 국제 보호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정책이 각국 국내 정치에 악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론 컨설팅업체 델타폴의 이사인 조 타이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에게 ‘박해를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을 허용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고, ‘불법 이주를 줄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라며 “하나의 일반적인 견해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곧 어떤 정치인이든 자신의 이민에 대한 견해가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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