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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쓰나미 끝내겠다" 네덜란드도 극우정당 승리, 유럽 反이민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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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열린 네덜란드 총선 후 출구조사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승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가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열린 네덜란드 총선 후 출구조사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승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가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이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핀란드·스위스 등에서 반(反)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극우 정당이 집권한 데 이어 네덜란드도 가세해 유럽의 극우·우파 바람이 한층 거세지는 모양새다.

이날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자유당은 하원 총 150석 가운데 잠정 37석을 확보, 2021년 총선(17석) 때보다 의석을 2배 이상 늘리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2위인 좌파 성향 녹색당·노동당 연합의 25석과 비교해서도 큰 격차다. 마르크 뤼터 현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은 24석으로 3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투표 종료 직후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출구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반이민 정서에 유럽 정치권 '우향우'

이번 총선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반(反) 이민' 정서였다. 네덜란드의 난민 신청자 수는 2021년 3만6620명에서 지난해 4만7991명으로 31% 급증했다. 올해 연말이면 난민 유입 규모가 7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일자리·주택 부족 등 사회문제가 한층 심각해지면서 네덜란드 내에서도 반(反)이민 정서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번 조기 총선도 난민 문제가 배경이 됐다. 2010년 취임해 역대 최장수 총리로 재직했던 마르크 뤼터 총리가 지난 7월 난민 정책 갈등을 이유로 연정 해체를 선언하면서 치러진 선거다. 자유민주당은 난민이 고국의 어린 자녀까지 추가로 데려오는 것을 월 200명 이내로만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연립정부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출구 없는 대립이 이어지면서 결국 연정이 무너졌다.

승리를 거머쥔 자유당은 빌더르스 대표를 주축으로 강력한 반(反)이슬람, 반(反)난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빌더르스는 22일 승리를 확신하는 연설에서 "유권자들이 '우리는 (기존 이민 정책에) 질렸다'고 말한 것"이라며 "네덜란드인을 다시 1순위로 돌려놓을 방법을 찾고, 망명과 이민의 쓰나미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출발한 유럽행 불법 이민선 안에 난민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출발한 유럽행 불법 이민선 안에 난민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 유럽 각국의 선거에서 극우·우파 정당의 승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치러진 스위스 총선에선 이민자 유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공약한 우익 성향의 스위스 국민당이 승리했다. 핀란드에선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민 제한 등을 내세운 핀란드인당이 46석을 얻어 2당으로 약진했고, 1당인 중도우파 국민연합당(48석)과 연립정권을 세웠다.

이탈리아도 지난해 10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정권이 들어섰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달 불법 이주민에 대한 구금 기간을 현재 135일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 늘리는 조치를 승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난민 급증과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극우 세력의 지지세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도 EU 탈퇴?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존경한다고 얘기했던 빌더르스 대표는 네덜란드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넥시트(NEXIT)'를 지지해온 인물이다. 빌더르스의 외교 정책은 반EU, 친러 성향을 띄고 있다. 빌더르스가 차기 네덜란드의 총리가 돼 넥시트를 추진할 경우, 향후 유럽 국가들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를 두고 폴리티코는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볼 때 당장 EU 탈퇴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빌더르스가 EU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다른 유럽 국가의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껏 EU가 고수해온 기후변화 대책, EU 개혁, 우르라이나 무기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네덜란드 총선 출구 조사 결과 발표 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밝혔다.

22일(현지시간) 열린 네덜란드 총선 후 출구조사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승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지자들과 당원이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 선거 포스터 뒤에서 얘기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열린 네덜란드 총선 후 출구조사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승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지자들과 당원이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 선거 포스터 뒤에서 얘기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정 구성까지 난항 예상 

네덜란드에서는 총선 1위를 차지한 정당 대표가 통상 총리 후보자로 추천된다. 다만 자유당이 총리를 배출하고 집권에 성공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최소 과반 의석(76석)이 필요한데, 네덜란드는 다당제 형태를 띠는 정치 지형 탓에 의석을 많이 확보한 상위 정당 최소 4개가 연정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 정당들은 자유당과 손잡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2021년 총선 당시 때도 마르크 뤼터 현 총리의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꾸리기까지 300일 가까이 걸렸다.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37석을 확보한 자유당의 존재감을 무시 못 할 것"이라며 다른 정당들을 향해 연정 구성 협력을 촉구했다.

AP통신은 "1위를 차지한 자유당의 입김이 매우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빌더르스 대표가 차기 총리로 등극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새 연립 정부가 구성될 내년 상반기까지는 뤼터 현 총리가 과도 정부를 이끌 예정이다. 13년간 재임해온 최장수 총리인 뤼터는 조기 총선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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