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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쏘는 후티, 유럽·한국 우는데…중국만 맘대로 다닌다, 왜

중앙일보

입력

6년 전 중국에선 '홍해작전(중국명 홍해행동)'이란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홍해 인접 국가인 예멘에서 테러단체의 인질로 잡혔던 중국인들을 자국 해군이 구출했던 실화가 바탕이다. 미국을 뛰어넘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홍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애국주의 영화'엔 중국의 해양패권 열망이 담겼다.

그런데 중국인의 애국심을 다시 불타오르게 할만한 일이 지금 홍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지적했다. 최근 중동 정세 덕에 영화처럼 중국이 홍해를 마음대로 누빌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가 됐다는 분석이다.

개봉 20일 만에 박스오피스 31억 위안(약 5200억원)을 돌파한 중국 영화 홍해행동. 전작의 흥행을 업고 올해 속편이 나올 예정이다. 샤오훙수

개봉 20일 만에 박스오피스 31억 위안(약 5200억원)을 돌파한 중국 영화 홍해행동. 전작의 흥행을 업고 올해 속편이 나올 예정이다. 샤오훙수

매체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에 불안감이 높아진 홍해에서 자국 화물선을 호위하고 있다. 지난 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에 본사를 둔 싱가포르 등록선사인 시레전드(Sea Legend) 측은 중국 해군이 홍해에서 자사 화물선 5척을 호위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일본·한국 등 각국 선사들이 세계 해상 무역의 15%를 차지하는 홍해에서 운송을 중단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말부터 예멘 후티 반군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자 세계 1위 선사인 MSC(스위스)와 2위 머스크(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독일·일본·한국 등이 홍해 운송을 그만뒀다. 이에 현재 홍해를 오가는 선박 통행량은 지난해 말 이전 대비 최대 90%까지 줄었다.

2023년 12월 5일 예멘 알살리프 항구 인근 홍해 연안에서 예멘 후티 반군에 영국 기업 소유 갤럭시 리더호가 나포됐다. 사진은 무장한 사람들이 홍해 연안의 해변에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년 12월 5일 예멘 알살리프 항구 인근 홍해 연안에서 예멘 후티 반군에 영국 기업 소유 갤럭시 리더호가 나포됐다. 사진은 무장한 사람들이 홍해 연안의 해변에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FT "후티, 중국 배는 공격 안 해" 

반면 중국은 홍해 운송에 적극적이다. 후티 반군이 "중국과 러시아 선박의 안전운항을 보장하겠다"는 약속했기 때문이다. 후티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의 대표 동맹국이다.

특히 중국은 후티 반군으로부터 '프리패스'를 받았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산 연료를 운반하는 유조선도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즉 현재 홍해를 안심하고 오갈 수 있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한 셈이다. 최근 들어 홍해를 오가는 선박들은 '승무원은 모두 중국인이다' 등의 신호를 보내서 안전을 확보하려 애쓴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홍해 위기를 기회삼아 '무주공산' 혜택을 누리려는 중국 선사들도 등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해 위기를 기회삼아 '무주공산' 혜택을 누리려는 중국 선사들도 등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해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중국 선사들도 등장했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선사들이 웃고 있다. 홍해에 취항하기 위해 선박을 재배치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후티가 중국 상선을 공격하지 않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T에 따르면 칭다오에 본사를 둔 트랜스파르 해운은 웹사이트에 '환태평양 시장의 신흥기업'이라 강조하며 홍해 항로를 이용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 이 회사 선박인 지린호와 산둥호는 지난해 12월 수에즈 운하를 무사히 통과한 항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중국 기업 CU라인스는 '홍해 익스프레스'라는 전문 서비스까지 내놨다.

세계 물류의 동맥인 홍해는 중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준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원유의 50%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두 번째 무역 파트너인 유럽연합(EU)과의 무역 거래도 대부분 홍해를 통과한다.

"미국이 만든 수렁"…홍해 개입 꺼리는 中

중국에 홍해는 외교적으로도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이번 사태를 ‘미국이 만든 수렁’으로 인식한다"면서 "중국은 이 사태를 방관하거나 혹은 아랍과의 연대 강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후티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수십차례에 걸쳐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해왔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영국 등이 후티의 공격 타깃이 됐다.

일본도 지난해 11월 자국 해운사가 운항하는 선박 '갤럭시 리더호'를 후티 반군이 나포하는 수난을 당했다. 후티 반군 소속 정치국 간부 알부 하이티는 ANN 뉴스 인터뷰에서 "일본처럼 가자 지구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들은 신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해군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홍해행동. 샤오훙수

중국 해군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홍해행동. 샤오훙수

중국은 후티가 민간 선박들을 공격한 뒤에도 몇 주간 후티를 규탄하지 않았고, 중국 군함들도 민간 선박들의 구원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미국이 "홍해 위기 해결에 중국이 필요하다, 강대국 정신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지만, 중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에 동참하는 걸 거부했다. CNN은 "중국은 인근 지부티에 군사 기지가 있고, 인민해방군 해군에 해적퇴치 TF(태스크포스)가 있으면서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의 아슈켈론아카데믹칼리지 부교수인 모르데차이 차지자는 CNN에 "중국은 미국이 이끄는 서방 연합에 가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서방 연합에 가담하는 행동은 역내(중동)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중국의 지위를 약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계속 손 놓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기업들은 사우디·이집트 등 홍해 주변국에 200억 달러(약 26조47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CNN은 "중국이 중동에서 외교관계를 강화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이 후티 도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면서 "이는 중국에는 압박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유럽 운송비 한 달새 72% 급등

한편 홍해 위기가 3개월째를 맞으며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할 때 드는 해상 운송비가 한 달 만에 70% 이상 급등했다. 한국 관세청이 16일 발표한 '1월 수출입 운송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연합(EU)행 해상 수출 컨테이너의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당 운송 비용은 평균 434만5000원으로 전월보다 72% 올랐다. 이는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9년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한국 완성차업계 등에서는 홍해 위기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무역협회는 국내 수출입기업 110개사를 조사한 결과 74.6%가 상품 물류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기업의 공급망 타격이 현실화했다고 FT가 보도했다. 홍해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 등을 우회하며 물류비가 크게 올랐다. 12일 포브스에 따르면 해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하게 된 연료비만 이미 2억 달러(약 2666억원)에 달한다.

해상운임 비교업체 프라이토스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지중해까지 해상 운임은 지난해 11월 초 대비 290% 상승했다. 노무라 이코노미스트인 조지 모란은 1일 FT에 "홍해 위기가 유럽 기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라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영향이 왔다"고 말했다.

포브스는 "국제 거래비용과 연료비 증가 등을 합친 예상 손실액은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천문학적이다"면서 "유럽에서만 약 10억 달러(약 1조3300억원)"라고 분석했다.

일본 매체 도요게이자이는 일본의 해상 무역 비중이 99.6%에 달하는 만큼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의 경제위협요인으로 홍해 사태를 꼽았다. OECD는 "최근 홍해 위기에 따른 운임 상승, 운송 지연 등이 상품 가격을 올릴 수 있다"라면서 38개 회원국 수입물가지수가 5%포인트 오르고, 내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4%포인트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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