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열림원
사회생물학자이자,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서울대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책은 지금까지 100권이 넘는다고 한다. 1999년 나온 『개미제국의 발견』, 2년 전 베스트셀러가 된 『최재천의 공부』 같은 저서는 물론 역서·공저·편저까지 포함해서다. 그중 이 신간은 그의 전공에 대해 이렇다 할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쉽고 편하게 다가온다. 2013년부터 약 10년 동안 곳곳에서 대중에게 들려준 강연을 구어체 산문으로 정리한 결과다.
이를 통해 그의 삶의 이력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대학 입시에 두 번 낙방한 끝에 간신히 2지망으로 합격해 처음에는 전공에 별 열의가 없었다거나, 실험실 대신 한국의 개울물에 뛰어드는 미국인 노교수와의 만남 덕에 생물학자의 삶을 다시 보게 되었다든가 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미국에서 만난 스승들을 비롯해 학문적 혹은 직업적 지향의 계기가 된 경로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흥미롭다.
물론 개미나 박쥐처럼 그의 본업이라고 할 동물 얘기가 빠질 리는 없다. 이런 이야기들은 경쟁·협동·희생 등 대개 인간 사회에 대한 그의 시선과 맞물린다. 그가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 즉 "자연이 이러니까 우리도 이래야 한다"는 식의 관점을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연의 지혜'라는 것은 하루 이틀 새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편으로 적극적으로 자연을 모방하고 표절하자고도 주장한다. 표절은 불법이지만, "자연을 표절하는 건 합법"이라면서다. 찍찍이라고도 불리는 벨크로는 자연을 본뜬 기술의 쉬운 예. 저자는 이런 영역을 발전시킬 학문에 '의생학'이란 이름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의(擬)는 의성어나 의태어에 쓰이는 것과 같은 한자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아울러 저자는 공생을 강조하고, 기후변화 못지않게 생물다양성 문제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약 1만여년 전에는 지구의 모든 포유동물과 새의 전체 무게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의 무게가 96~99%의 비중을 차지한단다. 그는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공생인 혹은 '호모 심비우스'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렇게 적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