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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명이 노인 4명 돌본다? '간병 지옥' 없애줄 이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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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스타트업들 실버시장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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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지옥’에 서 있는 건 보호자와 환자 본인만이 아니다. 앞으로 연간 15조원(보건복지부)의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예산을 써야 하는 국가도 한발 걸치고 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선 재정 투입만으론 부족하다. 보호자 입장에선 돌봄 인력을 수월하게 구하고 환자를 잘 돌보는 게, 국가 입장에선 비용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게 탈(脫)지옥하는 길이다. 기술로 간병 난제(難題)를 해결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들이 있다. 벤처투자(VC) 업계 관심도 쏠린다. 실버 테크 시장의 미래를 짚어 봤다.

1. 고령화에 심해진 ‘노·노케어’…“노인 1명, 노인 4명 돌볼 판”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에서 관계자가 ‘이승보조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에서 관계자가 ‘이승보조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가 한국 노인 돌봄 시장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의 평균 연령이 60세(국민건강보험공단)를 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노인은 100만 명(국민건강보험공단, 2022년),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60만 명이다. 그나마 장기요양보험 적용을 받는 노인은 전체의 11%뿐이다. 나머지 노인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간병인을 찾아야 한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요양기관용 소프트웨어를 만든 스타트업 한국시니어연구소 이진열 대표는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인 일본도 요양 돌봄 인력 수십만 명이 부족하다”며 “한국은 앞으로 60대 요양보호사 1명이 노인 4명까지 돌봐야 요양 시스템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페인 포인트’(pain point·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가 확실하다는 건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버 테크 사업자들이 지향하는 바는 꽤 분명하다. 지속가능한 ‘휴먼 터치’다. 기술이 대체할 수 있는 건 최대한하고, 사람은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결국 플랫폼도, 로봇도, 각종 사물인터넷(IoT) 기기도 누가 이 목표를 더 잘 구현하는지 경쟁하는 셈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가장 절실한 건 믿을 수 있는 간병인 정보다. 돌봄 인력이 적다 보니 환자 가족은 이 시장에서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다. 간병인 연결 플랫폼 케어닥은 이 지점을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이다. 환자 상태 등을 꼼꼼하게 입력하면 병원과 집에서 돌봐줄 수 있는 간병인을 연결해 준다. 보호자에겐 간병인이 그동안 했던 일, 할 수 있는 일 같은 정보를 공유해 준다. 케어닥은 지난해 11월 시리즈 B 라운드를 통해 17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누적투자액은 315억원이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는 “돌봄 기간을 10년이라고 가정할 때 그 과정에서 정보 검색과 비교, 정신적 스트레스 등 기회비용을 줄이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간병인 연결 플랫폼 케어닥의 서비스 화면(왼쪽)과 신청 화면(오른쪽). 돌봄이 필요한 환자 정보를 자세히 입력할수록 연결이 잘 된다. 보호자에겐 간병인이 그동안 했던 일, 할 수 있는 일 같은 정보를 공유해 준다. [사진 케어닥 서비스 캡처]

간병인 연결 플랫폼 케어닥의 서비스 화면(왼쪽)과 신청 화면(오른쪽). 돌봄이 필요한 환자 정보를 자세히 입력할수록 연결이 잘 된다. 보호자에겐 간병인이 그동안 했던 일, 할 수 있는 일 같은 정보를 공유해 준다. [사진 케어닥 서비스 캡처]

방문요양센터나 주간보호센터는 아날로그의 끝판왕이다. 재무·인사 등을 관리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없이 종이와 사람만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사람 귀한 돌봄 시장에서 행정 업무에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 2019년 창업한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이 문제에 천착한 곳이다. 창업 2년 만에 110억원을 투자받았다. 요양기관 행정 자동화 솔루션 ‘하이케어’와 구인·구직 플랫폼 ‘요보사랑’을 운영 중이다. 현재 1500개 센터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국 고령화의 미래’라고 볼 수 있는 일본에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이 이미 많다고 한다.

두 회사가 돌봄 테크의 대중화 단계라면, 센서나 로봇 같은 기술은 아직 초기 시험단계다. 침대에 센서를 달면 따로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노인의 생체 신호, 낙상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센서를 비롯한 침대 등은 장기요양보험에서 비용의 85%를 지원하는 ‘복지 용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수백만원의 비용을 다 내야 한다. 기술은 있는데 확산이 더딘 이유다.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의료기술발전위원장은 “간병인이 24시간 같이 있어도 요양병원에선 새벽에 낙상 골절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센서가 이를 막진 못해도 낙상 위험이 있을 때 알람을 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 일본은 이미 돌봄로봇 보급…한국서도 ‘실버 테크’ 꿈틀

수년 전부터 요양원에 로봇 보급이 보편화한 일본과 달리 국내 돌봄 로봇 시장은 비용 문제, 정서적 거부감 등 이유로 아직 초기 단계이다. 가장 속도를 내는 건 ‘이승보조 로봇’이다. 돌봄 행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옮기는 것이다. 고령인 요양보호사·간병인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립재활원 등은 2019년부터 노인을 위한 돌봄 로봇 서비스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한국은 내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2030년 전체 인구의 30%, 2050년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고령친화 사업의 시장 규모(한국보건사업진흥원)는 2012년 27조3809억원에서 2020년 72조8305억원으로 성장했다. 2030년엔 239조원(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3. 베이버부머가 시장 기폭제…“2030년 실버 산업 분수령”

전문가들은 ‘베이비 부머’(1955~63년생)가 본격적으로 실버 시장에 편입하는 시기를 분기점으로 꼽는다. 이들은 비교적 스마트 기기 등에 익숙하고 구매력이 높다. 2028년엔 이들이 노인 인구의 56%를 차지할 전망이다. 업계에선 YOLD(Young Old·젊은 노인)가 주축인 실버 소비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 김영선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지연구소장은 “그간 기업들에선 실버 테크 상품의 확장성에 의문이 있었다”며 “베이비 부머가 부모 세대를 위한 구매자를 넘어 소비 당사자가 되는 2028~203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실버 테크와 연결된다. 치매 등 질병이 시작되기 전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로봇 등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인지 치료 소프트웨어 ‘코그테라’를 개발하는 이모코그는 최근 유럽에 의료기기를 수출하기 위한 인증을 획득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로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닷츠’ 윤영섭 대표는 “AI와 로봇이 고도로 발달하면 치매 예방·진단·치료 등 전 주기 케어를 제공하는 개인 맞춤형 돌봄 로봇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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