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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새의 품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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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살기 팍팍한 게 한국만은 아닌가 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그의 책을 읽고 삶의 균형을 찾았다”며 추천한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최근 뉴욕타임스(NYT) 칼럼의 제목은 이렇다. ‘슬프고, 외롭고, 화가 잔뜩 나 있고, 비열한 사회를 구원하는 법.’

브룩스는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알고 있어도) 굳이 그렇게 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정치에 과몰입돼 있고, 의기소침하며, 생기도 없고 교양도 없다”고 덧붙였다.

송미경 작가의 『오늘의 개, 새』(사계절) 중 29쪽.

송미경 작가의 『오늘의 개, 새』(사계절) 중 29쪽.

백주에 정치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계속 등장한다. 지난달 배현진 의원 벽돌 피습, 2022년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망치 피습,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등등. 폭력 영화는 필요 없다. 일상 곳곳에 폭력이 스며있으니.

자잘한 몰상식도 이젠 일상에 뿌리 내렸다.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던 사람이 다른 승객에겐 “길을 왜 막냐”고 밀친다. 밖으로 나가려 카페 문을 열었더니 바깥에서 먼저 슬쩍 들어오는 ‘노터치 얌체 입성’은 다반사. 비정상의 정상화다. 출퇴근길에선 각박과 옹졸이 느껴진다. 창밖은 시내 곳곳 나부끼는 정당 플래카드로 눈이 어지럽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 참 열심이다. 물고 뜯을 서로가 없으면 어찌 정치를 했을까 싶을 정도.

브룩스가 제시한 해결의 열쇠는 ‘문화’에 있다. 그는 문학이나 미술, 공연이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고, 인류애를 회복하는 수단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그가 쓴 책 『인간의 품격』 『두 번째 산』 역시 ‘나’보다는 ‘남’, ‘혼자’ 아닌 ‘함께’를 강조한다. 격하게 공감하며 떠오른 책이 있으니, 송미경 작가의 『오늘의 개, 새』(사계절). 평범한 개와 새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송 작가의 만년필에서 피어난 개와 새는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다가도, 사과를 나눠 먹다가 뽀뽀를 한다. 개와 새도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거늘, 사람이라고 못할 게 뭔가. 브룩스의 책 제목처럼 인간의 품격은 인간 스스로 찾아야 할 터.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사회가 더 사나워질 일만 있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여와 야, 누가 개이고 누가 새인지, 하여튼 개와 새 모두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개와 새를 본받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 흉내라도 내보길. 개와 새도 하는데, 인간이 못할쏘냐. 이렇게 쓰고 보니, 못할 것 같아 걱정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