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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대출, 경쟁의 ‘약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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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은행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최근 만난 A씨는 은행에 대한 분통부터 터뜨렸다. 주가연계증권(ELS) 등 은행 스스로 신뢰를 깎아 먹은 게 여럿이지만, 이번엔 대환대출 이야기였다. A씨는 지난주 ‘대환대출 인프라’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은행을 바꿨는데, 대출금리가 연 6%에서 연 3.7%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다달이 내야할 원리금은 월 16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50만원이 줄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터치 몇 번으로 연간 이자 부담이 600만원 줄어든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고 한다. 6%대 대출을 내주고 있던 은행 지점장이 직접 전화를 해 “대출을 유지해주신다면 금리를 연 3.7%로 내려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A씨는 “깜깜이 이자장사로 은행들이 성과급 장사를 벌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환대출 인프라에서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해 지면서 은행의 금리 인하 경쟁도 시작됐다. [연합뉴스]

대환대출 인프라에서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해 지면서 은행의 금리 인하 경쟁도 시작됐다. [연합뉴스]

대환대출 인프라는 지난해 5월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반응은 뜨겁다. 주담대가 대환대출 인프라에 포함된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일까지 5대 시중은행에 접수된 신청 건수는 총 1만4783건, 신청액은 2조533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자감면 효과도 뚜렷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주담대 대환대출의 평균 대출 금리 인하 폭은 1.5%포인트, 1인당 연간 이자 절감액은 337만원이었다.

대환대출 인프라 하나로 대출이자가 쑥 내려간 건 그간 은행에 없던 경쟁 때문이다. 5대 시중 은행들은 전 은행권 대출·예금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데다, 금융당국의 입맛에 맞게 금리를 움직일 때가 많다 보니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대환대출로 각 은행의 실적 차가 벌어지는 등 경쟁의 강도가 한결 높아졌다고 한다.

은행 간의 금리 경쟁이 늘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지나친 금리 경쟁이 이어지다 보면 은행의 기초체력 저하 등의 탈이 생기고 결국엔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은행이 이자장사로 번 돈을 어떻게 썼는지 따져보면 소비자에겐 실보단 득이 클 것 같다. 금융당국의 지난해 7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엔 “은행 이자 수익이 미래(자본확충, 벤처투자 등)를 위해 활용되지 않고 임직원과 주주를 위한 성과급과 배당으로 지급됐다”고 분석돼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예금과 대출 금리에 번번이 개입하며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써왔다. 은행 역시 관치금융 그림자 뒤에서 땅 짚고 헤엄치듯 이자 장사를 해왔다. 대환대출 플랫폼의 교훈은 이렇다. 금리를 내리고 올리라는 금융감독원장의 한마디보다 은행 간의 경쟁 촉진이 소비자 편익에 훨씬 도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