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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양두구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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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한자성어를 익숙한 정치 용어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2022년 8월 윤핵관을 겨냥해 양두구육을 꺼냈을 때 친윤계는 “윤석열 대통령을 개고기에 비유했다”며 극렬 반발했고, 결국 이 발언을 계기로 이준석은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성접대 논란 등 이준석의 부적절한 처신도 분명 문제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한창 탄력을 받아야 할 시기에 여권 주류가 그를 배제하기 위해 벌인 집단 자해극은 지금의 정권 심판론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중징계 이후 36일 만에 기자회견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 [뉴스1]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중징계 이후 36일 만에 기자회견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 [뉴스1]

정치 입문 때부터 따라다닌 ‘싸가지론’, 갈등 심화를 부추기는 ‘젠더 전략’, 아버지뻘 안철수 의원을 향한 끊임없는 무례한 행동, 친윤계 집단 행동과 유사한 ‘천아용인’의 떼거리 정치 등 숱한 논란에도 그가 보수 진영 일각의 지지를 받은 건 언젠가는 그가 보수의 지도자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치 입문 12년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상계동 갈빗집에서 탈당 선언을 하며 눈물을 훔칠 때만 해도 ‘애썼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그였다.

그렇게 개혁신당을 창당해 홀로서기에 나선 그는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을 잡는 ‘빅텐트’ 통합을 결행했다. ‘이준석 신당’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던 통합 전의 개혁신당이 좀처럼 뜨지 않아 돌파구가 필요했고, 결국엔 제3지대가 총선 전에 한몸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른 급변침이었다.

아무리 현실적 계산이 앞섰다 해도 불과 20일 전에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이라고 천명했다. 그래놓고선 통합 뒤엔 “‘개혁 보수’ 용어는 어쩌면 자유주의자의 별호였을지 모른다. (개혁 보수는) 보수의 테두리 내에서 쓸 수 밖에 없었던 이름”이라고 표변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얄팍한 변검술로밖에 보이지 않는 해명이다.

개혁신당 당원 상당수는 전격 통합에 반발해 탈당하고 있다.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나서, 반(反)페미니즘에 끌려서, 청년 정치를 갈구해서 등 이유야 다양했겠지만 이준석식 정치에 큰 기대를 하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빠’가 ‘까’가 되면 무섭다고, ‘준빠’(이준석 극성 지지자)가 이준석을 맹렬히 비판하는 모습을 보니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런 이준석은 14일에도 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해 양두구육을 꺼냈다. 하지만 정치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개혁 보수’라서 당비를 냈는데 돌아보니 ‘무근본 정당’이라면 이것이 진정 양두구육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