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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잇따른 ‘전부 무죄’…자성과 자숙의 시간 절실한 검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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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권 논리 꿰맞춘 무리한 기소에 예고된 참사

기업 발목 잡는 고질적 ‘뒤끝 항소’ 중단돼야

법원이 지난달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지난 5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혐의 47개, 이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 관련 혐의 19개 전부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두 사건은 모두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검찰은 정치권의 코드에 꿰맞춰 수사와 기소를 강행했다가 대참사의 성적표를 받게 됐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주요 재판을 거래하고, 특정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골자다. 대법원은 세 차례나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불법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아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면서 본격적 수사 국면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50여 명의 검사가 8개월 동안 법원을 탈탈 털었다. 제출한 증거 서면이 17만 쪽에 달해 ‘트럭기소’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도 4년11개월 재판의 결과는 ‘전부 무죄’였다.

삼성 불법 승계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처음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오로지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승계만을 위한 것이라고 미리 결론을 짜놓은 듯했다. 압수수색만 50차례가 넘고 임직원 110여 명을 430차례 불러 조사했다. 그래도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고의적인 합병비율 조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 19개의 혐의를 적용해 3년 넘게 재판해 온 결과가 역시 ‘전부 무죄’였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5년6개월 동안 삼성은 중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영 공백에 처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었다. 당시 두 사건 수사의 지휘부가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중앙지검 3차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경제범죄형사부장) 등이다. 전 정부의 대표적 코드인사였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과 중앙지검장으로 수사에 깊숙이 관여했었다.

검찰은 통렬히 반성하고 자숙해야 한다. 일단 구속시키면 성공이라는 관행에 압수수색부터 시작하는 구태 수사도 혁신해야 한다. 밀행성을 유지하다 명백한 증거가 나왔을 때 속전속결 처리한다는 ‘특수수사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 이 회장 기소를 강행했던 이복현 금감원장은 선고를 앞두고 “이번 절차가 (삼성의) 사법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사법리스크 해소의 계기가 되려면 고질적인 검찰의 ‘뒤끝 항소’부터 재고해야 마땅하다. 더 이상 ‘정치 검찰’이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