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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첨단 전투기 기술 USB에 담기는 동안 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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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형 전투기 KF-21 다섯번째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 방위사업청]

한국형 전투기 KF-21 다섯번째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 방위사업청]

인도네시아 기술자 전투기 제작 기술 유출 시도

첨단 기술 보호 위한 보안점검 전기로 삼아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됐던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초음속 국산전투기인 KF-21 개발과 관련한 자료를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한 지 어제로 21일이 됐다. 국가정보원과 국군방첩사령부 등은 해당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혐의를 받고 있는 기술자가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아 빼돌리려 했던 자료가 6600여 개로 방대한 데다 일부 파일에는 암호를 걸어둬 해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탓이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기술 유출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초음속 훈련기인 T-50 개발에 성공한 KAI는 한국형 전투기인 KF-21을 개발하며 인도네시아를 참여시켰다. 당초 개발비의 20%인 1조7000억원을 인도네시아가 부담하는 대신 KAI가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한다는 조건이었다. KF-21은 2022년 7월 첫 비행에 성공한 이래 초음속 및 야간비행, 무기 탑재 시험 등을 거쳐 최종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약속과 달리 1조원이 넘는 개발 비용을 아직 지불하지 않은 상태다. 최악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축적한 KAI의 항공 관련 기술이 고스란히 빠져나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KAI 측의 설명대로 검색대에서 USB를 발견했고, 미수에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 유출이 비단 KAI에 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서 반도체 공정이나 제작 기술을 확보해 중국 등 외국 기업으로 이직하거나 관련 정보를 해외에 넘기다 발각된 사례도 있다. 유출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기술이 넘어간 사례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 산업은 정보와의 전쟁이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특히 모든 첨단 과학기술의 결집체인 군수산업의 경우 언제나 기술 탈취의 대상이다.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정보 당국이 수시로 보안교육을 하고 실태를 점검하는 이유다.

KAI는 물론 보안이 생명인 방산 기업들이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정보 및 기술 보호의 1차 책임은 보유하고 있는 측에 있다. KAI는 당장 어떻게 기술자 한 명이 그렇게 많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또 회사 안에서 기밀성 자료를 USB로 손쉽게 옮겼다는 점도 반드시 짚어 보고 가야 할 문제다. 산업 정보 보호를 담당하는 당국 역시 해당 업체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강화하고, 기술 유출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고도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의 강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