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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의료계도 대승적 협력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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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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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의사 단체, 89.3% 찬성 여론 수용하고

필수의료·지방의료 정상화 위해 머리 맞대 주길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에서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2006년부터 3058명에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이 19년 만에 65.4% 확대된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총파업 불사” 입장을 밝혔다. 대학병원 진료에 필수 인력인 전공의 단체는 88.2%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우리 의료 현실은 누구보다 의사들이 가장 잘 안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가 걷잡을 수 없이 붕괴 중이다. 아침마다 부모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 앞에서 줄을 선다. 응급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죽기도 한다. 지방의 중증 환자는 서울 대형 병원 앞에 숙소를 얻어야 치료를 받는 실정이다. 의대 증원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부 의사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반발하지만, 국민 대다수(89.3%)는 증원에 찬성한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의협은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와 의료인의 법적 부담 완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해 왔다. 이런 제안과 의대 증원을 함께 놓고 바람직한 방안을 숙의했어야 했다.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리겠다는 윤석열 정부 방침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 무렵이다. 이후 정부와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만 27차례 소통했다. 그 결과 의료계 주장을 정부가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소아청소년과 기피의 계기로 지목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의료진이 구속됐던 사례를 거론했다. “의료사고 관련 고소·고발이 있다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의사 면책에 대한 진정성을 보였다. 환자 단체의 반대를 무릅썼다. 이에 비해 의협은 의대 증원을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의대 증원은 문재인 정부가 매년 400명씩 10년간 늘린다는 계획을 2020년 발표했다가 코로나19 시국에 전공의 파업으로 무산됐다. 의사 단체가 또다시 파업 카드를 꺼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론을 무시하고 직역 이기주의에 매몰돼 집단행동을 벌인다면 더 큰 민심의 비난과 불이익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증원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의대 쏠림이 심각한 대학 입시에서 첨단 분야 인재 확보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있다.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과 건강보험 부담 증가에 대한 걱정도 제기된다. 의료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료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이 아니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승적 협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