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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해외서 귀국 자녀' 고민 되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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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어 배워온 만큼 우리말 실력이 줄었네요."

미국에서 2년 동안 살다 지난 9월 귀국한 박선미((37.경기도 고양시)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서영이가 문제집을 풀면서 "관계없는 것을 고르라는데 관계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막막한 표정이다.

서영이처럼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하는 초.중.고교생은 2001년 한해 동안 8천여명. 1991년 1천9백여명의 4배가 넘는다.

외국생활은 외국어를 익히고 외국 문화를 체험했다는 점에서 값진 경험이지만 귀국 후 국내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줄어든 국어 실력과 교우관계 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조바심은 금물=외국에서 살다온 자녀 교육 전문학원인 세한아카데미 김철영 원장은 "학업의 공백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므로 조급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원장은 또 "먼저 귀국한 사람들의 성공사례에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단편적인 사례를 따라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을 확률이 도리어 커진다는 것. "아이의 상황이나 능력은 제각각이므로 개인교습을 통한 1대1 학습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대부분의 외국에서 살다온 자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은 국어. 어휘력이 떨어지고 행간의 의미를 못 찾아내는가 하면, 글의 배경이 되는 역사나 사건을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국어 실력 늘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독서다. 아주 쉬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아이가 거부할 경우 부모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게 좋다.

◆"엄마들도 너무 튀지 마세요"=영국에서 4년 동안 살다 지난해 귀국한 박모(45)씨는 중1인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돌아온 후 교장실을 찾아갔다가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졌다. 영국에서는 교장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한국에서는 돌출행동으로 인식됐기 때문.

외국에서 살다온 자녀들은 개방적인 외국 학교생활에 익숙해 수업시간에 질문이 많고 영어발음도 달라 튀게 마련. 이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놀림이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선 부모가 먼저 흥분하기 쉽다. 하지만 교우관계 회복도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에게 차분하게 대처방안을 알려주는 게 좋다.

분당 내정중 김인숙 교사는 "엄마가 부모 모임이나 아이 친구들 모임에서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는 식으로 말하면 도리어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단 아이가 오랜기간 외톨이로 지내면 교사와 상담해 조력자가 될 만한 성격의 친구를 짝으로 정해주는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잘 적응했는데…"="영어 한마디 못하면서도 적응을 잘 했는데 귀국해서 더 적응하기 힘들다는 게 말이 되나요?" 외국에서 살다온 자녀 부모들의 잦은 질문이다.

박진생 신경정신과 원장은 "아이들이 외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겪었던 스트레스를 한국에서 또다시 경험하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국내 적응을 더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내 재적응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빨리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사대부속초교 귀국자녀반 민태일 교사는 "적은 자원, 국민소득의 차이 등 외국과 우리나라 상황이 다름을 솔직하게 설명해 주라"고 권했다.

이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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