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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절했던 ‘히든 트럼프’…숨은 표 찾기 중요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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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선거 시즌이 되면 언론사 취재진은 민심을 읽기 위해 유권자들을 만난다. 기자는 미국 대선 경선이 열린 지난달 23일 뉴햄프셔주 도시 맨체스터를 찾았다. 민주당과 공화당 프라이머리(반개방형 예비경선)가 열린 이 날 시내 앤서니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를 방문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들을 접촉했는데,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전략적 역선택’이 전혀 허언은 아니란 걸 봤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의 실체도 접했다.

인터뷰를 시도한 사람은 20여 명. 3분의 1 이상이 손사래를 쳤고 질문에 답한 이는 12명이었다. 그중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6명. 대선 후보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찍었다는 이가 5명이었고, 1명은 다른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지난달 23일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시 앤서니 커뮤니티센터에서 유권자들이 대선 경선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23일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시 앤서니 커뮤니티센터에서 유권자들이 대선 경선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 ‘무당적’이라는 3명 중 2명은 공화당 후보 니키 헤일리를 찍었다고 밝혔다. “‘독재자 트럼프’를 막기 위해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임시 무당파가 됐다”는 에드워드 맨지, “바이든을 지지하는데 ‘트럼프 반대’를 위해 다른 공화당 후보(헤일리)를 찍었다”는 익명의 여성이다. 트럼프가 민주당원들이 조직적으로 헤일리를 돕는다며 역선택론을 폈는데, 적어도 두 명의 사례가 목격됐다. 무당적 상태라는 잭 실바도 “변화”와 “헤일리 승산”을 역설한 점으로 미뤄, 또 당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친공화당 성향이라는 레이 파퀸도 “트럼프는 지도자감이 아니다”고 한 것으로 미뤄 헤일리를 찍은 듯했다.

지지율 6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와는 달리 트럼프를 찍었다는 유권자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두어 시간쯤 됐을 때 자신을 공화당원이라고 소개하며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는 크레이그 로웰, 리사 그레벌을 ‘가까스로’ 만났다. 결과적으로 바이든 5표, 다른 민주당 후보 1표, 헤일리 4표, 트럼프 2표가 나온 셈이다. 몇 시간 뒤 이 투표소의 개표 결과를 봤는데 깜짝 놀랐다. 트럼프 748표, 헤일리 408표, 바이든 370표.

인터뷰를 피한 사람 중 상당수는 트럼프 지지자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들은 ‘샤이 트럼프’일까. 일각에선 이제 속내를 굳이 숨기는 샤이 트럼프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들은 배타적인 경향의 ‘앵그리 트럼프’쯤 되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히든 트럼프’가 유권자 저변에 깔려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가 예상되는 이번 미 대선은 숨은 지지자 찾기가 중요한 숙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