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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말할 수 있는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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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한때 전 세계인들이 열창했던 팝송 한 곡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주 개봉한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 덕분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 다큐는 1985년 1월 28일 밤 로스앤젤레스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 당대 최고의 팝스타 46명이 모여 하룻밤 동안에 녹음을 마치는 과정의 뒷얘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맞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이야기다.

바오 뉴엔 감독의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바오 뉴엔 감독의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슈퍼스타 한 명 모셔오는 것 자체가 벅찬 일일 텐데 작사·작곡을 담당한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그리고 프로듀싱을 맡은 퀸시 존스는 어떻게 쉰명 가까운 거물들을 밤새 작은 스튜디오에 붙들어 놓고 팝의 ‘역사’를 썼을까. 그 답은 단순하지만 보편적인 가치에 있었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명분과 통찰력 있는 리더십이 주효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근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존스의 탁월한 조율능력과 리치의 친화력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다.

극비리에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단 하루를 디(D)데이로 정하고 스타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물밑 섭외를 진행했다. 시상식 참석을 위해 LA에 모인 스타 대다수는 자신이 어떤 파트를 부르게 될지도 모른 채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녹음실 문 앞에는 여섯 글자가 붙어 있었다. ‘Check your ego at the door.(자존심은 문밖에 두고 오세요.)’ 퀸시 존스가 즉석에서 종이에 쓴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그가 준비한 ‘정신교육’은 이뿐 아니었다. 바로 한 달 전 영국 팝 스타들이 참여한 아프리카 돕기 프로젝트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기획한 밥 겔도프의 깜짝 연설이었다. 겔도프는 밀가루 15포대로 2만7000명을 먹여야 하는 아프리카 기근 상황의 심각성과 왜 이 시점에 음악인의 단결이 중요한지에 대해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11시간 동안 계속된 녹음실 안에서는 스타들의 개성만큼 각양각색의 요구와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된 스타, 느닷없이 스와힐리어로 노래하자는 스타, 그 제안에 문을 박차고 나간 스타, 배고프다며 보채는 스타, 과음으로 가사가 가물가물한 스타 등등. 그 모든 시한폭탄 같은 상황에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진화 작업을 하는 리치, 때로는 학생을 야단치듯 나무라는 존스. 그들의 노력과 리더십이 있었기에 20세기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명곡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