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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09) 소설 삼국지 최고의 인물 제갈량, 국궁진췌의 대명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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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도 읽기 싫어질 때가 두 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관우가 죽은 후이고, 두 번째는 제갈량이 죽은 이후입니다. 특히,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은 이후의 소설 읽기는 마라토너가 마의 30㎞ 선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느낌들을 받습니다. 아마도 제갈량이 호로곡에서 사마의 삼부자를 죽이지 못하고 하늘에 외쳤던 허탈감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일명 ‘제갈량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모든 삼국지 애독자들의 공통점을 담아 제갈량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조는 백만 대군과 함께 황제를 등에 업고 제후에게 명령하고 있으니 그에 맞붙어 싸우는 것은 불가합니다. 손권은 3대째 강동을 다스리고 있는데 지세가 험난하고 그곳 백성들이 따르고 있으니, 우리의 지원세력은 되어도 차지하기는 힘듭니다. 형주지역은 북으로 한수와 면수가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에 남쪽의 물산을 모두 차지할 수 있으며, 동으로는 오군 회계와 가깝고, 서로는 파촉과 통하니 반드시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정해진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없는 곳이니 이제 하늘이 장군께 주신 것과 같습니다. …… 장군은 인화(人和)를 내세우셔야 합니다. 우선 형주를 차지하여 안방으로 삼고 곧이어 서천을 차지하여 공업을 연 후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다면, 머지않아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융중에서 농사를 지으며 때를 기다리던 청년 제갈량은 유비가 삼고초려하며 천하경영의 의견을 구하자 이처럼 거침없는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합니다. 제갈량의 계책을 들은 유비는 10년 묵은 체증이 꺼지고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귀가 뜨이고 눈이 밝아져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가슴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이날 이후로 두 사람은 수어지교가 됩니다.

삼고초려한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삼고초려한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나는 이름도 없을뿐더러 덕망도 없으니 선생이 부디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 도와주기 바라오. 선생이 이곳에만 있으면 저 가엾은 백성들은 누가 돌본단 말이오?

장군께서 그렇게 말씀하며 저를 생각해 주시니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제갈량은 초려를 나와 유비와 16년간을 동고동락했습니다.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패하고 백제성에서 회한을 눈물을 흘리며 죽어갈 때, 제갈량에게 아들을 부탁하며 여의치 않으면 직접 임금이 되라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때에도 ‘견마지로’를 다하겠노라고 하였고 유비는 안심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한 유비가 임종에 이르러서도 재차 제갈량에게 강조한 것은 끝까지 자신의 아들을 보필하라는 당부였던 것입니다. 이후 제갈량은 승상에 올라 실질적으로 촉한을 이끌어 나갑니다.

유비의 탁고에 견마지로를 다짐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의 탁고에 견마지로를 다짐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은 유비가 삼고초려할 때의 계책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홀로 남은 자신이 끝내 가야 할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매번 위나라를 공략합니다. 하지만 장안을 공격하지 않고 기산을 차지하기에만 힘을 쏟습니다. 이는 촉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든든하게 지킴으로써 위나라의 공격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제갈량의 국가 대사였습니다. 군사력으로 약세인 촉한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습니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는 위연은 자신의 용맹함만 믿고 직접 쳐들어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제게 역적을 무찌르고 한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게 하시어 성과가 없으면 저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현에 고하시고, 폐하 또한 스스로 모색하시어 정도(定道)를 자문하시고 순리에 맞는 말만 들이시되 선제의 유조(遺詔)를 기억하소서. 저는 은혜를 받듦에 복받치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원정에 오르게 되어 표를 올리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을 드릴지도 알지 못하겠나이다.

제갈량은 위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후주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립니다. 제갈량은 출사표를 227년과 228년에 각각 작성합니다. 이를 구분하여 전후 출사표라고 부르는데, 흔히 말하는 출사표는 전출사표를 말합니다. 출사표는 충신의 진실한 마음이 넘쳐흐르는 고금의 걸작입니다. 출사표에는 군주에 대한 변함없는 단심(丹心)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유비의 삼고초려에 대한 보은이자 신의이며, 제갈량 스스로 사심을 버리고 후주 유선을 보좌하겠다는 맹세이기도 합니다.

송나라 때의 학자 조여시(趙與時)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나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심중에서 솟구치는 절절한 진심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천하의 명문장인 까닭입니다. 제갈량의 출사표에 눈물을 흘리며 몸을 아끼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람이 남송의 명장 악비입니다. 그가 남송의 현실 속에서 비분강개하며 일필휘지한 제갈량의 출사표는 오늘날 중국 전역의 제갈량 유적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이치고 정해진 운명 또한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신 제갈량은 천성이 어리석고 옹졸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대명을 받잡고 승상 직에 전념하였습니다. 군사를 일으켜 북벌에 나서 아직 성공하지 못했는데 병이 고황에까지 이를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매 끝내 폐하를 섬기지 못함이 한스럽기만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깨끗한 마음을 쌓아 사심을 없게 하시고, 항상 검소한 생활로 백성을 사랑하소서. 돌아가신 선황께 효도를 다 하고, 손아래 가족들에는 자애로운 은혜를 잊지 마소서.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시고, 뛰어난 이들을 승진시키며, 간사한 것들은 곧바로 물리쳐 풍속을 순조롭게 하소서. 신의 집에는 뽕나무 8백 그루와 밭 50경이 있으니 먹고 살기에 충분합니다.

소설 삼국지 최고의 주인공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소설 삼국지 최고의 주인공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오장원의 영채를 둘러본 제갈량은 강유, 마대, 양의를 불러 유언을 합니다. 그리고 후주 유선에게 마지막 표를 올렸습니다. 군주로서의 부친 유비를 닮지 못한 유선에 대한 충정 어린 당부가 담긴 표문이었습니다. 유언을 마친 제갈량은 오장원의 군중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27세에 초려를 나와 유비를 따라나선 지 27년이었습니다. 후세 많은 문인이 제갈량의 죽음을 추모했는데 두보 역시 제갈량을 슬퍼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어젯밤 큰 별이 군영 앞에 떨어지더니 長星昨夜墜前營
오늘 공명의 부음 소식 듣는구나. 訃報先生此日傾
군막에서는 지휘소리 들리지 않고 虎帳不聞施號令
오직 기린대에 공훈 이름만 올곧게 있구나. 麟臺惟顯著勳名
넋 잃은 문하 삼천 객 남겨 놓고 空餘門下三千客
가슴속 품었던 십만 군사도 저버렸구려. 辜負胸中十萬兵
녹음방초 흐드러진 맑은 날 한낮인데 好看綠陰淸晝裡
이제금 그 노랫소리 다시 들을 길 없네. 於今無復雅歌聲

모종강은 삼국지에서 승상을 지낸 세 사람을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조조와 사마의가 승상을 지낸 것과 제갈량이 승상을 지낸 것을 비교해보면 조정을 장악한 것도 같고, 혼자 병권을 장악한 것도 같고, 귀신같은 전략으로 뭇 사람의 추앙을 받고 감복시킨 것 또한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역적질하고, 어떤 사람은 충성을 다했다. 하나는 사심이 있었고, 하나는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는 자손을 위한 계획을 했고, 하나는 자손을 위한 계획을 하지 않았다. 조조가 죽을 때는 조비를 당부하고 사마의가 죽을 때는 사마사와 사마소를 당부했지만, 제갈량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행하던 승상의 일은 장완과 비의에게 부탁했고, 그가 행하던 대장군의 일은 강유에게 부탁했다. 제갈첨과 제갈상을 끼워 넣은 적이 없다. 뽕나무 8백 그루와 밭 50경 밖에는 한 가지도 가족을 위해 유념한 것이 없다.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제갈량은 여전히 거문고를 타거나 무릎을 감싸 안고 있는 공명일 뿐이다. 원래부터 공을 이룬 다음에는 호수를 타고 흘러간 범려나 오곡을 먹지 않은 장량 같이 되려고 했지만, 일을 끝마치지 못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오장원 전장에서 죽고 말았다. 아! 부귀공명한 사람 중에서 이런 사람을 또 찾을 수 있겠는가?’

제갈량의 죽음은 촉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개 떠돌이 삼형제가 나라를 세우고 체제를 정비하게 된 것은 제갈량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제갈량은 유비 사후, 국가 기강과 안정을 위하여 모든 국사를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런 제갈량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촉에 커다란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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