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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08) 오장원의 가을,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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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잃었던 정신을 다시 차리자 막사로 나가 천문을 보고는 운명이 조석에 달려있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강유가 기양법(祈禳法)을 써서 되살릴 것을 요청했습니다. 제갈량은 강유의 제안을 받아 49명의 갑사를 배치하고 향불을 피우고 북두칠성께 축원했습니다.

북두칠성에게 수명 연장 기도를 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북두칠성에게 수명 연장 기도를 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저는 난세에 태어나 기꺼이 시골에서 늙으려 하였으나 소열황제께서 세 번이나 찾아주시는 은혜를 입었고, 어린 아드님에 대한 지중한 부탁까지 받았으니 감히 견마지로를 다하여 맹세코 나라의 역적을 토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장성(將星)이 떨어지려 하고 양수(陽壽)가 끝나려 하옵니다. 삼가 소회를 적어 하느님께 고하면서 엎드려 자비를 바라오니 굽어살피시고 신의 수명을 늘려 주셔서, 위로 임금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 백성의 목숨을 구하며 선왕들이 남겨 주신 옛터를 되찾아 한나라가 영원히 이어지게 하여 주소서. 감히 터무니없이 비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간절한 충정에서 비는 것이옵니다.

제갈량은 축원을 마치고 막사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 채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병을 무릅쓰고 낮이면 군무(軍務)를 상의하고 밤이면 별자리를 밟듯 북두칠성에게 빌었습니다. 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사마의는 영채를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천문을 보다가 대단히 기뻐하며 하후패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장성(將星)이 제자리를 잃고 있다. 틀림없이 제갈량이 병들어 오래잖아 죽을 것이다. 너는 군사 1천명을 이끌고 오장원으로 가서 탐색해보라. 만일 촉군이 소란을 피우면서 싸우러 나오지 않는다면 제갈량이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내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공격하겠다.

하후패는 사마의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갔습니다. 제갈량은 엿새째 되는 날 밤, 주등(主燈)이 밝게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영채 밖에서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람을 시켜 물어보려고 하는 때에 위연이 급하게 뛰어들어오며 고했습니다.

위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위연이 급하게 뛰어들며 본명등을 쓰러뜨려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제갈량은 한숨을 쉬며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다.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마의는 내가 병이 났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허실을 탐색해 보려고 그들을 보낸 것이다. 그대가 빨리 나아 맞아 싸우도록 하라.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연은 막사를 나와 군사를 이끌고 영채 밖으로 돌격해 나갔습니다. 하후패는 위연이 공격해오자 허둥지둥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습니다. 제갈량은 위연에게 자신의 영채를 지키라고 명령하고 강유를 불렀습니다.

나는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 바쳐 중원을 수복하고 한나라를 중흥시키고자 했는데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어쩌겠느냐?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내가 평생 배운 것을 이미 24편, 총 10만4천1백12자의 책으로 묶어 놓았다. 그 안에는 팔무(八務), 칠계(七戒), 육공(六恐), 오구(五懼)의 병법이 들어 있다. 내 여러 장수를 둘러보았으나 오직 자네만이 내 책을 물려받을 만하였다.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

강유는 소리 내어 울고 절하면서 받았습니다. 제갈량은 마대를 불러 귓가에 대고 은밀하게 계책을 주면서 ‘내가 죽거든 꼭 그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양의가 들어오자 제갈량은 그를 침상 앞으로 불러 비단 주머니를 하나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위연은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가 반란을 일으켜 싸우게 되거든 너는 이 주머니부터 열어보라. 그러면 위연을 죽일 사람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제갈량은 모두에게 낱낱이 지시를 마치고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저녁이 되어서야 깨어났습니다. 그는 즉시 표를 써서 후주에게 보냈습니다. 표를 본 후주는 매우 놀라 상서(尙書) 이복에게 밤을 도와 군중으로 가서 문병하고 뒷일을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이복이 제갈량을 문병하고 후주의 명을 전하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불행하게도 중도에 죽게 되었소. 국가 대사를 허무하게 접게 되었으니 온 천하에 큰 죄를 짓는구려. 내가 죽은 뒤 공들은 충성을 다하여 주상을 돕고 나라에서 여태껏 써오던 제도를 다시 바꿔서는 아니될 것이오. 내가 등용한 사람들 역시 가벼이 쫓아내서는 아니 되오. 나의 병법은 모두 강유에게 전수했으니 자연히 그가 나의 뜻을 이어 국가를 위해 힘을 낼 것이오. 나는 이제 잘 살아야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이오. 곧 표를 남겨 천자께 아뢰도록 하겠소.

제갈량은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를 타고 각 영채를 둘러보았습니다.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순간 뼛속까지 시려왔습니다. 제갈량은 오랫동안 탄식하다가 막사로 돌아왔습니다. 병세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양의를 불러 모두에게 분부한 것을 알려주고 철군의 총괄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당부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죽었다는 소문을 내지 말고 큰 감실을 하나 만들어 나의 시신을 그 속에 앉힌 다음, 쌀 일곱 알을 입 안에 넣고 발밑에 등잔 하나를 밝혀 놓으라. 군영은 평소처럼 조용하게 유지하고 절대 곡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장성(將星)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의 음혼(陰魂)이 다시 깨어나 안정시킬 것이다. 사마의는 장성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반드시 의심하고 놀라워할 것이다. 우리 군은 후군을 먼저 떠나보낸 다음, 한 부대 한 부대 천천히 퇴각시키도록 하라. 만약 사마의가 추격해오면 네가 진세를 벌이고 가던 길을 곱 짚어 깃발을 휘날리고 북을 치면서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리고 내가 만들어 두었던 나의 나무 조각상을 수레 위에 안치하고 대소 장사가 좌우로 늘어서 진 앞으로 밀고 나가면 사마의는 그것을 보고 놀라 달아날 것이다.

제갈량은 다시 허겁지겁 돌아온 이복에게 자신의 후임자로 장완과 비의를 추천하고 생을 끝마쳤습니다. 때는 234년 가을로 그의 나이 54세였습니다.

사마의는 천문을 보고 제갈량이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즉시 명령을 하달하여 추격하려다가 순간 제갈량이 술법을 부려 자신을 유인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하후패가 오장원을 살펴보고 촉군이 물러갔음을 알렸습니다. 사마의는 발을 구르며 빨리 추격을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사마의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촉군을 추격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촉군이 보였습니다. 사마의가 더욱 박차를 가해 추격을 할 때 갑자기 포소리가 물리며 사방에서 함성이 일며 초군이 북을 치며 달려왔습니다. 중군에는 제갈량의 깃발과 사륜거를 타고 있는 제갈량도 보였습니다. 사마의는 놀라 기겁을 했습니다.

제갈량이 아직 살아 있구나! 내가 그의 계략에 말려들어 중요한 지역까지 깊이 들어왔다.

적장은 달아나지 말라. 너희들은 우리 승상의 계책에 말려들었다.

강유가 쫓아오자 위군은 혼비백산하여 갑옷과 투구를 떨구고 무기도 버린 채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사마의도 50여 리를 한달음에 달아나서 자신의 머리가 달려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사마의는 이틀이 지나 다시 적정을 탐색도록 하였습니다. 그곳에 사는 백성이 말했습니다.

혼비백산하여 50리를 달아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혼비백산하여 50리를 달아난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촉군이 골짜기로 철수해 들어가자 군중에는 백기를 세웠고, 곡소리가 땅을 진동했습니다. 공명은 정말 죽었습니다. 다만 강유를 남겨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뒤를 막게 하였는데, 전날 수레 위에 앉아 있던 공명은 바로 나무로 만든 조각상이었습니다.

아, 나는 그가 살아 있는 줄만 알았지 죽은 줄은 몰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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