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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107) 두건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은 사마의, 업무과중으로 병난 제갈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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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곡에서 죽음을 모면한 사마의는 전 군에게 다시 나가서 싸우자는 사람이 있으면 목을 치겠다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든 장수는 명령을 받자 각자의 진지를 지키며 나가지 않았습니다. 곽회가 제갈량의 동정을 보고했습니다.

요즘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순찰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영채 세울 곳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만일 무공으로 나와 산을 의지하고 동쪽으로 진출한다면 우리는 모두 위태로워지겠지만, 만일 위수 남쪽에서 서쪽으로 나가 오장원에 머무른다면 별탈이 없을 것일세.

제갈량이 오장원에 둔치고 있습니다.

대위황제(大魏皇帝)의 홍복이다! 굳게 지키고 나가지 말라. 시일을 끌다보면 반드시 저들에게 변이 생길 것이다.

제갈량은 오장원에 영채를 세우고 여러 차례 군사를 보내 싸움을 걸었지만 위군은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 비단으로 짠 여자 옷 한 벌을 큰 합에 담고 편지 한 통을 써서 위군 본영으로 보냈습니다. 사마의는 합을 열어보고 편지를 뜯어보았습니다.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사마의. 출처=예슝(葉雄) 화백

‘중달! 기왕 대장이 되어 중원의 군사를 이끌고 왔으면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들고 자웅을 가릴 생각은 않고 기꺼이 땅굴 속 둥지에 틀어박혀 칼날과 화살을 피하고 있으니 여자들과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제 인편에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옷을 보내니 만일 나와서 싸우지 않겠다면 두 번 절하고 받게나. 만일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고, 아직 사내다운 기개가 있다면 빨리 답장을 주게. 날짜에 맞춰 싸우러 가겠네.’

사마의는 편지를 보고 나자 속으로 크게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너털웃음을 웃으며 편지를 가져온 사자를 정중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공명은 침식을 어떻게 하고, 일 처리는 어떻게 하는가?

승상께서는 일찍 일어나시고 밤늦게 주무십니다. 매 20대 이상의 벌은 모두 직접 처리하시고, 식사도 적게 하십니다.

사마의는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옷을 받고 편지도 보았으나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승상의 침식과 일의 많고 적음만 묻고 군사에 관한 일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하게 대답하자, 그는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다하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중달은 나를 깊이 알고 있구나!

주부(主簿) 양옹이 각자의 직위에 따라 주어진 책무가 있음을 들어 제갈량에게 승상으로서의 일만을 하실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제의 지중하신 부탁을 받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한편 위군은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두건과 부녀자의 옷을 보내 모욕한 것을 알고는 모두 분개하여 사마의에게 고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국의 명장들입니다. 어찌 이렇게 촉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참을 수가 있습니까? 출전하여 자웅을 가르게 해주소서.

나도 무서워서 출전하지 않고 기꺼이 모욕을 받는 것이 아니다. 천자께서 조서를 내려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말라’고 엄명하셨으니 어쩌느냐? 이제 만약 가벼이 나갔다가는 임금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출정한 장수가 이대로 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너희들이 모두 나가 싸우고 싶다면 잠시 기다려라. 내가 천자께 아뢰어 허락을 받은 다음 힘을 합하여 싸우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사마의는 즉시 표를 써서 조예에게 아뢰도록 하였습니다. 조예에게 올린 표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조예.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예. 출처=예슝(葉雄) 화백

‘신은 재주도 없이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엎드려 명령을 받들건대 신들에게 굳게 지키고 싸우지 못하게 하시어 촉인들이 자멸하기를 기다렸으나, 이제 제갈량이 부인들이 쓰는 두건을 신에게 보내어 신을 여자처럼 대하고 있으니 어찌하옵니까? 치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신은 삼가 폐하께 먼저 아뢰오니 이른 시일 안에 한바탕 죽기로 싸워 조정의 은혜를 갚고 전군의 치욕을 씻도록 해주소서. 신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조예가 표를 읽고 나서 여러 신하에게 표를 다시 올린 사마의의 까닭을 의아해했습니다. 그러자 위위(衛尉) 신비가 사마의의 생각을 읽고 말했습니다.

사마의는 본래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모욕한 일로 뭇 장수가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성지를 내려 장수들의 마음을 막아달라고 특별히 이 표를 올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조예는 신비에게 조서를 주어 사마의에게 보냈습니다. 신비는 사마의의 영채에 도착하여 조예의 명령을 선포했습니다.

만일 다시 나가 싸우자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명령을 거역한 죄로 다스리겠다.

공은 참으로 내 마음을 아시는구려.

출정 중인 대장이 표를 올리신 까닭을 모르면 아니 되지요.

사마의의 전략이 촉군에게도 보고되었습니다. 제갈량은 그것이 사마의의 술책임을 알았습니다. 강유가 궁금해하자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는 본래 싸울 마음이 없었다.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군사들에게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장수가 전장에 나와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고 행동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어찌 그것을 몰라서 천리 밖에서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것은 바로 사마의가 여러 장수가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조예의 명령을 빌어 군사들의 마음을 억누르려는 것이었고, 이제 또 이 말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 군사들의 마음을 풀어놓으려는 것이다.

육손. 출처=예슝(葉雄) 화백

육손. 출처=예슝(葉雄) 화백

한창 사마의의 전략을 분석하고 있을 때 비의가 왔습니다. 제갈량은 비의가 온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비의는 동오가 삼로로 위를 쳐들어갔으나 오히려 조예의 대군에게 막히고 만총이 동오의 군량과 전쟁 도구 등을 모두 불태워버리자 전의를 상실하였으며, 육손이 손권과 협공하려고 보낸 표가 도중에 위군에게 빼앗겨 기밀까지 누설되자 아무런 공도 없이 되돌아갔다고 보고했습니다. 제갈량은 보고를 듣자 끝내 긴 한숨을 몰아쉬더니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내 정신이 혼미한 것을 보니 옛날 병이 다시 도진 것 같다. 아마도 살아나지 못할 것 같다!

제갈량은 운명은 이제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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