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헌법‧법‧기계‧산업...근대문명을 이끈 키워드가 정착하기까지[BOOK]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책표지

책표지

근대 용어의 탄생
윤혜준 지음
교유서가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낱말에는 근대문명의 내력‧내면이 유전자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헌법‧대통령‧민주주의‧자유‧혁명‧진보‧법‧기계‧제국‧계몽‧산업‧소비‧경쟁‧자본주의‧교통‧리뷰‧비즈니스‧통화‧유토피아‧대학‧개혁‧프로젝트‧아메리카 등이다.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근대문명을 상징하거나 이끈 키워드가 산업‧정치 혁명으로 그 요람이 된 영국 등에서 탄생해 일본 등에서 한자어로 번역되고 한국에 정착한 과정을 탐구한다.

오랜 시간과 사연을 거치면서 의미와 맥락이 바뀐 경우도 적지 않다. 예로 한국의 헌법은 1948년 제헌 헌법부터 87년 제6공화국 헌법까지 여러 차례 틀과 구조가 바뀌었다. 상당수 국민이 헌법을 ‘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뜯어고치면 되는 합의문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이유다. 지은이는 헌법재판소에서 정치적 쟁점을 정치적으로 판결해주는 사례가 누적되면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헌법을 정치놀음의 일종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다른 사례가 법이다. 법치가 강조되고 법률 전문가들이 권력 핵심에 포진하면서 법은 새롭게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법이 자체 기준과 합리성, 그리고 고유 전통에 따라 유지‧보완되는 자율적 체계인지, 정치권과 국가권력이 ‘민의’의 이름으로 수정‧제정‧폐기할 수 있는 정치행위의 종속변수인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법의 사전적 의미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명령‧규칙 조례 따위’로 정의되면서 권력자들이 국가‧공공기관에서 법을 자기들 뜻대로 주무를 여지를 열어놓았다고 개탄한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문명을 개척하고 확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근대문명을 ‘산업화를 거친 기계문명’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계의 지배는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의 개념보다 문화적‧종교적‧역사적‧정치적 차이를 더욱 쉽게 넘어서기 때문이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요약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